[Special Interview] 저, 다녀왔습니다
저, 다녀왔습니다
인생의 산도 넘고 개그의 산도 넘고 권재관의 10년, 그리고 또 10년 후
지난 5월 말, SNS를 통해 그가 자전거 미국 서부 횡단을 목표로 홀로 떠난 것이 포착되었다. 평소 자전거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는 그였지만, 둘째를 임신한 아내와 다섯 살 아이를 두고 혼자서 한 달간의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용기가 꽤 부러웠다. 속속 올라오는 그의 SNS소식에 ‘좋아요’를 누르며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editor 송해련 photo 정해천
이번 인터뷰는 미국 베가스 스트립 초입의 입간판 앞에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네바다 주 거대한 카지노의 섬, 쇼의 천국으로 불리는 라스베스가스. 이 사막에는 인생 역전을 꿈꾸며 찾아온 이들뿐 아니라 신혼여행의 남녀, 그리고 영화 <리빙 라스베가스>의 니컬러스 케이지처럼 삶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사람까지 다양한 이미지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섞여 있는 곳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SNS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 속인물은 의외였다. 바로 개그맨 권재관, 자전거와 트레일러, 헬멧과 마스크, 고글을 착용하고 누가 봐도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의 모습으로 라스베이거스의 입간판 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지난 5월 말, SNS를 통해 그가 자전거 미국 서부 횡단을 목표로 홀로 떠났음이 포착되었다. 평소 자전거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는 그였지만, 둘째를 임신한 아내 김경아 씨와 다섯 살 아들 선율이를 두고 혼자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용기는 박수칠만했다. 속속 올라오는 그의 SNS 소식에 ‘좋아요’를 누르며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꽉 채운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여행은 뜨겁고 치열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속에 달콤함이 있을 것이고 어느 만큼은 세상사의 찌든 상념도 털어냈을 것이다. 개그맨 10년차에 떠난 여행 속에서 그는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아 왔을지도 궁금했다.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KBS2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이하개콘)>의 새로운 코너 ‘리액션 야구단’에 합류했고 부산 MBC 해양프로그램 <바다야 놀자>의 MC를 맡아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 동안 부산에서 열리는 제3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BICF)’의 서포터 역할까지 그의 일주일은 역시 ‘연예인’임을 실감케 했다. 한편 기분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개콘 새 코너 ‘리액션 야구단’이 코너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였다. 사실 권재관은 몸 개그로 빵빵 터지는 스타일이나 센 캐릭터를 소화화해 내는 개그맨은 아니다. 올해 10년차를 맞으며 수많은 코너를 거쳐 왔지만 코너를 받쳐주는 역할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감수성’, ‘끝사랑’, ‘버티고’, ‘10년 후’ 등 코너 속의 그를 보면 은근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베테랑 개그맨’이 되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대로 권재관은 오래전부터 무선조종 자동차, 일명 RC로 불리는 자동차 마니아이다. 수준급의 스노보드 실력을 갖고 있으며 그 스스로 자전거 전도사라 할 만큼 자전거에 푹 빠져 지내는 일명 ‘자덕’이기도 하다. 이 남자, 은근 아니 완전 궁금하다. KBS 21기 공채 개그맨 동기이자 그의 아내인 김경아는 그의 매력을 ‘터프함’이라고 이야기하던데, 그것도 확인해봐야 겠다.
새로운 코너 ‘리액션 야구단’의 반응이 뜨겁다. 본인에게 개콘 시청률이란?
피로 혹은 회복제. 시청률에 어떻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여름철은 개콘 시청률이 많이 떨어지는 시기다. 더구나 동시간대 개그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하기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한때 20%를 넘어 3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개콘의 전성기를 누렸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시청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다. ‘리액션 야구단’은 신인부터 선배까지 많은 수의 개그맨이 출연하는 대형 코너다. 투수가 제시어를 던지면 타자가 리액션을 보이고 반응에 따라 파울, 안타, 홈런 등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코너의 중심을 이루는 해설자의 역할이다 보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올해로 개그맨 10년차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10년 동안 개그맨으로 살 수 있었던 힘은?
나는 10년 동안 한 번도 코너를 쉰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개콘을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같이 출근을 한다. 일주일이 개그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화가 끝나면 바로 아이템 회의와 연습이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최종 리허설에서 지적을 받으면 밤을 새워 수정하고 다시 연습이 반복되기 일쑤다. 대한민국 개그맨은 웃기고 화려하기보다는 외롭고, 남을 웃기기 위해 본인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 극한직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요일 밤, 어떤 가족에게는 화합의 시간이 되고 어떤 직장인에게는 ‘월요병’을 잊게 해준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역시 힘이 된다. 이 코너 때문에 ‘개콘’ 본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정말 아이처럼 참 좋다.
개그의 매력은 뭔가?
개그는 실시간이다. 무대에서 관객에게 바로 평가받는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개그의 매력이다. 내 개그가 관객의 표정을 움직일 때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주는 웃음, 긍정의 힘을 느낄 때, 그때가 참 좋다.
페북의 팔로워가 11만 명이 넘더라. 바쁜 와중에도 귀찮을 법도 한데 끊임없이 SNS에 소식을 전하고, 블로그를 통해서 마니아다운 RC카 전문정보, 자전거 정보,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며 놀랍기도 했다.
SNS를 누군가는 시간 낭비, 열정 낭비라고도 말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살아가는 힘이 되는 곳이다. 이번 여행 때도 페친의 관심과 응원 메시지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고 꼭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동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페북으로 만나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잠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라스베거스에 있는 어떤 포토그래퍼는 나의 여행 소식을 듣고 사진을 찍어준다며 연락을 해오기도 해 그곳에서 만났다. 취미 또한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은 더 큰 재미를 알려준다.
자전거로 미국 횡단여행을 꿈꾼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2008년 개그맨 3년차를 지날 즈음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들면서 아주 힘이 들었다. 가방에 옷 두벌을 달랑 챙겨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서울에서 강릉으로 달렸다. 그때도 8월이었고, 날이 더운데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폭우가 내렸다. 그냥 달렸다. 강릉에서 울진으로 포항, 경주, 부산, 목포 창원, 땅끝 마을까지 전국을 자전거로 달렸다. 사실 그때 울진 어느 높은 고개에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짓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여행이고 개그맨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길에 널브러져 생각하니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그만 두는 것은 또 아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달렸다. 개그맨이라는 직업도 그랬다.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자신에게 약속했다. 개그맨 10년 쯤 되면 내가 다시 나를 위해 다시 먼 길을 달려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자전거 여행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올해 초이다. 서울-LA왕복 항공권이 84만 원에 뜬 거다. 얼른 예약했다. 티켓예약을 마친 날, 둘째가 생긴 것을 알았다. 둘째의 선물 같았다. 아내 경아도 흔쾌히 나의 여행을 응원해주었다.
미국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10년 후’라는 개그 코너를 하며 정말 많은 팬들의 사랑을 실감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개그맨 인생 10년차에 떠난 여행이 나에게 준 것은 역시 사람이다. 물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스베거스에 화려함과 입이 떡 벌어지는 쇼와 무대를 보며 들뜨고 흥분되기도 했다. 상상도 가늠도 할 수 없었던 그랜드캐넌의 웅장함, 후버댐의 규모에 순간 멍해졌던 적도 있다. 사진으로 담고 싶은 순간은 수 없이 많았지만 사진으로 담는 순간 바로 ‘오징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람은 달랐다. 여행은 무엇보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다시 살 수 있는 행복을 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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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행이다.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 같은 수많은 기억이 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첫날 잠자리를 신세졌던 친구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는 첫날 LA를 떠나 출발한 날, 밤늦은 시간 높은 산에서 연락이 끊기자 연락이 끊긴 지점을 찾아와 7시간동안 나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나는 가민으로 루트 정보를 확인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높고 험한 산을 만났다. 목숨을 내놓고 산짐승과 무섭게 불어대는 바람소리 속에서 야영을 했고, 길이 엇갈린 이 친구는 아침까지 나를 걱정하며 산 속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친구는 일이 끝나면 언제나 나의 안부를 확인했고, 내가 하루 동안 열심히 페달질해 간 거리를 단 2시간 만에 차로와 족발을 건네주고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다섯 시간을 달려와 나의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어떤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여행에 합류하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헬멧과 고글, 마스크까지 쓴 나를 알아보고 차를 돌려 나를 응원해주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너무 고마운 일이 많았다. 아내 경아와 아들의 응원 역시 매일매일을 달리게 하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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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달라진 점은? 아내 개그맨이 아닌 아내 김경아가 남편에게 하는 가장 많은 잔소리는 무엇인가?
결혼 후 많이 바빠졌지만, 반대로 마음은 평온해졌다. 이제는 챙겨야 할 가족이 생겼고,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으며, 개그는 한결 밝아진 느낌이다. ‘행복 바이러스’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타인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10년 후’나 ‘리액션 야구단’과 같은 개콘 코너에 투영되는 것 같다.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는 아무래도 집에 빨리 오라는 소리다. 둘째를 가졌고, 다섯 살 선율이를 혼자 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은 되도록 집에 일찍 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개콘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아내 김경아 씨가 ‘안녕하세요’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취미생활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RC 마니아에 고가의 자전거 구입에 돈을 쓰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 같다.
RC 카나 자전거, 스노보드의 취미는 결혼 전부터 즐긴 아주 오래된 취미생활이었고, 결혼으로 인해 서로의 취향이 무시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고 공유해가는 것이 결혼 아니겠는가. 취미 생활을 하는데 돈이 좀 드는 건 사실이다. 방송에 나가서 자전거 가격이 1,500만 원이라고 얘기했다가 주변에서 엄청 욕을 먹기도 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전거는?
2대 가지고 있다. 미국 갈 때 가져갔던 풀다이나믹스(Full Dynamix) 자전거와 풀샥 자전거 예티(Yety) 이렇게 2대를 가지고 있다. 미국 여행을 함께 했던 풀다이나믹스 자전거는 2008년 스노보드대회에 나가 2등 상품으로 받은 노트북을 팔아 구입한 아주 오래된 자전거이다. 이번 여행을 하며 많이 망가졌다. 여행 중에도 수리를 몇 번했다. TV에서 고가로 알려진 예티 자전거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권재관의 자전거 라이프스타일은?
평소에 김포 집에서 여의도까지 30km 정도를 거의 매일 출퇴근 한다. 산악자전거를 즐기기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주변에서 자전거를 탄다. 미국 자전거 여행 이후 당분간 자전거는 좀 멀리하자 했는데 금세 또 그리워지더라. 지난 2012년에는 국제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코리아’ 홍보대사를 하기도 했다. KT&G 상상유니브를 통해 젊은 친구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강사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들과 함께 독도수호 캠페인의 일환으로 서울~독도 자전거 일주를 한 것은 아주 의미가 있었다.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재능과 기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도 만들고 싶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베트남으로 봉사활동을 갔다 온 이야기를 페북에서 본 것 같다.
내 책상 위에는 플랜 코리아를 통해 후원하는 나의 아이, 호띠기앙의 사진이 놓여있다. 이번에 그 아이를 만나러 갔다. 베트남 다낭에서 차로 7시간 걸리는 꽝뜨리라는 곳에 살고 있는데 그 먼 길을 찾아 갔건만 내가 다가가면 어찌나 우는지 친해지는 것은 실패했다. 좀 아쉽다. 하지만 건강하게만 자란다면 그걸로 됐다.
아들 선율, 태어날 둘째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
이것은 나와 아내, 나의 아들 선율에게 똑같이 바라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주변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면을 성장시키는 것 중 하나는 여행만한 것이 없다.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광경은 돈 주고도 못 보는 경험이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광활한 자연 앞에서 깨닫게 된다. 그 순간 겸손을 알게 되고, 인생에서 넘어야 할 생경한 고통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개그는 나에게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넘어도, 넘어도 더 큰 산이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 산을 넘으며 내가 누군지 알아가게 된다. 10년 후, 나는 또 어떤 산을 넘고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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