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구 선수
원석에서 보석으로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장경구 선수
올해로 만 스물 한 살이 된 사이클 리스트 장경구. 그의 이력은 나이에 비해 한마디로 ‘눈부시게’ 화려하다. 사이클에 입문한지 2년 만에 각종 대회 우승권에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그가 투르 드 코리아의 구간 우승으로 성장 가능성을 입증시키며 각 매체들은 그에게 ‘천재, 신동’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editor 송해련 photo 이성규
Stage 1
사이클 계에 떠오른 신예
장경구 선수와 오랫동안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인터뷰 일정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선수들의 특성상 해외 경기나 전지훈련으로 국외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장시간에 걸쳐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던 것은 사이클 선수들 가운데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때. 2010년 투르 드 코리아 7구간 우승을 거머쥐며 장경구 선수는 사이클계의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더구나 총 34시간 31분 22초의 기록으로 개인 종합 7위에 올랐다. 종합 1위에는 2분 16초 뒤진 성적이지만 국내 선수 중 유일하게 10위 안에 포함되면서 한국 사이클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가 되었다.
현재 만 스물 한살의 어린 선수. 사이클에 입문한지 2년 만에 각종 대회 우승권에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그가 투르 드 코리아의 구간 우승으로 성장 가능성을 입증시키며 각 매체들은 그에게 천재, 신동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천재’란 칭호는 양날의 검과 같다. 특히 어린 천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물론 천재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다만 혹시 그러한 칭호들로 인해 향후에 그것이 그들 인생에 족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올해로 만 스물 한 살이 된 사이클 리스트 장경구. 그의 이력은 나이에 비해 한마디로 ‘눈부시게’ 화려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한 빙상선수 생활에서 첫 대회의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고 고등학교 시절 이미 주니어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었으며, 화려한 수상경력을 통해 스케이트 선수로서도 큰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장경구 선수는 고교 2학년 때까지 11년동안 활약했던 빙상선수로서의 타이틀을 버리고 사이클 선수로 입문한다. 사이클을 시작한지 2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우승컵을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켰고,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로 발탁되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그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천재라든가. 타고 났다는 말은 듣기 싫어요. 그건 정말 저에 대해 모르고 하는 소리죠. 유치원 시절 스케이트를 처음 타고, 초등학교 1학년에 스케이트 선수가 된 이후 한 번도 운동을 쉰 적이 없어요. 유치원 때는 9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양구의 산으로 등산을 갔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윗몸 일으키기 100번을 했어요. 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아버지는 늘 남들이 하지 않는 시간에 더 운동해야 그들을 이길 수 있다며 어두운 새벽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불빛 삼아 운동시킬 정도였거든요. 작년 서울시청에서 가평군청으로 이적한 뒤 주행 5시간, 웨이트트레이닝 2시간 등 하루 적어도 7~8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오고 있고 그동안 체중 감량을 위해 방울토마토와 닭가슴살로 끼니를 때웠어요. 음식조절은 늘 인생의 풀리지 않는 숙제죠.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유치원 시절에 아버지와 산을 오를 때도, 그리고 지금 하루 새벽에서 밤까지 운동을 할 때도 별로 싫지 않았다는 거죠.”
그를 가까이서 만나니 더 앳되어 보였다. 강원도 특유의 사투리가 베인 그의 말투. 아직은 무언가 설익은 듯, 시골 소년같은 수줍음으로 인터뷰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의 말하는 면모나 행동방식은 한참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카메라를 향해 호기심을 표하고, 셀카의 포즈를 취하는 영락없이 장난기 많은 소년의 그것이었지만 한 꺼풀을 벗겨내면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자신을 다잡아온 그를 보니 오늘의 장경구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Stage 2
빙상선수에서 사이클 선수로의 전향
“제가 양구 출신이에요. 비봉초교에서 남춘천중, 강원체고를 나왔는데 강원체고 시절 빙상선수들은 여름 시즌이 되면 대체운동으로 사이클을 타곤 했어요. 그때 체고의 사이클팀 선수들과 경륜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미시령 고개를 넘고 나니 제가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더라구요. 그때 저의 자전거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성능도 형편 없었고, 평페달을 끼고 그냥 운동화를 신은 상태여서 그날 함께 운동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는 거예요. 그렇게 허영봉 코치님이 사이클 선수로의 전향을 적극 추천했고, 빙상과 사이클 선수 두 가지 종목을 넘나들며 대회에 참가하곤 했어요.”
주목받는 빙상 선수에서 새로운 사이클 세계로의 행보. 그래서인지 장경구 선수에게는 그가 지금까지 접한 모든 스타일운동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빙상선수로서의 지구력과 독주력, 사이클 선수로의 힘 등이 자유롭게 뭉쳤다 풀어지는 것이다.
장경구 선수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내가 쌓아온 운동 요소를 결합해 시합의 현장감과 함께 나의 원천적인 힘을 더 확장해갈 수 있는 끈기’라고 말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출신인 그는 무엇보다 독주에 강하다. 장경구 선수는 빙상 선수 시절 항상 혼자 타던 버릇때문에 동료들이 같이 달리지 않아도 힘을 잃지 않는다.
“선수생명 등의 비전 등을 보았을 때 사이클이 저에게 더 적합했고, 무엇보다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아버지는 물론 저의 빙상 선수생활에 멘토 역할을 해주었던 빙상 코치님까지 주변의 반대는 극심했어요. 인생에 있어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저의 의지를 믿어준 이들에게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아직 시작이잖아요. 두 가지 종목을 경험한 장점도 있지만 늦게 시작한 사이클의 테크닉과 핸들 조향 능력은 많이 떨어져요. 여럿이 함께 달릴 때의 감각, 주행 컨트롤도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 같아요.”
Stage3
가슴 속 이야기, 고마운 사람들
어려서부터 장경구 선수의 아버지가 강조한 말이 있다고 했다. 운동선수로서 술과 담배, 여자를 멀리 하라고 배웠고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언제나 아버지는 ‘스스로 느끼고 행동해야 된다는 것’과 ‘훈련에 대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가르쳤다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아직도 저는 많은 일들을 부모님과 상의를 해요. 뒤돌아 생각해보면 부모님 말씀은 항상 옳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저에게 천사죠. 언제나 제 편이고 힘들면 언제든 운동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유치원 이후 운동선수로 살면서 한번 도 참석하지 못한 졸업식에 참석해서 아들의 공로상을 대신 받아 오는 낙을 최고로 삼으며 살았던 엄마에요.”
장경구 선수는 또 한사람의 이야기를 기사에 꼭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며 큰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에게는 또 다른 어머니가 계세요. 저의 운동 선수 인생에 있어 너무 중요한 분이에요. 초등학교 시절 춘천교대부속 형들과 운동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만난 분이에요.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형들 속에서 운동하는 제가 예뻐 보였는지 그 분의 아들과 함께 데리고 나가 먹을 것도 사주시고, 예쁜 옷도 사주시는 거예요. 이후 저의 후원자로 어린 저를 춘천으로 데려가 주거에서부터 먹는 것, 선수로서의 생활까지 저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주셨어요. 저에게 또 다른 엄마가 생긴 거죠. 공부를 게을리 하면 큰엄마의 아들과 똑같이 종아리를 때려주셨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어요. 제가 힘들어 할 때는 운동은 즐기면서 해야 한다며 저를 격려해주셨는데, 스포츠 선수로서 좋은 운동선수가 되는 것보다 그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늘 일러주시는 분이에요. 해외 훈련이나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희 엄마보다 큰 엄마 선물을 더 챙기게 되요.”
운이 좋은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크나큰 행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재능을 알아봐준 큰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또한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인생에서 또 한 사람의 아들을 얻었으니 말이다.
장경구 선수는 또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사이클 선수들을 만나면 존경하는 선배, 혹은 선수로서 자주 거론되는 조호성 선수다.
“제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경기 중에 아마도 투르 드 코리아 7간 우승을 꼽을 수 밖에 없어요. 정말 힘든 경기였거든요. 경북 구미-영주구간의 144km코스였는데 춥고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였어요.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무릎은 너무 아파 와서 결승점을 30km정도 앞두고 포기하고 싶어라지더라구요. 그 순간 서울시청 소속으로 있을 때 조호성 선배가 해주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힘든 건 잠시이지만 우승의 순간은 평생 선수와 함께 한다는 거였죠. 그냥 죽으라고 달렸어요. 선배님의 말을 기억하면서요. 조호성 선배는 워낙 나이차도 많기 때문에 선배이기보다 아버지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고, 격려해주는 정말 고맙고 존경하는 선배입니다.”
장경구 선수의 인생에 있어 고마운 사람들을 꼽자면 인터뷰가 끝이 날 것같지가 않다. 현재 가평군청 김정환 감독을 비롯해 한 솥밥을 먹는 가평군청 선수들까지.
“소속 선수들은 좋은 선배이자, 친구이자, 동료에요. 불만이 있으면 숙소에서 다같이 모여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 속 얘기를 다 꺼내고 대화로 풀기도 하면서 지내요. 감독님의 훈련 스타일은 되도록 많이 타게 하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하는 거에요. 올해는 감독님께서 저에게 아주 좋은 기회를 선물로 주셨어요. 런던 올림픽을 대비해 스위스 UCI센터에서 훈련하고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거든요. 3월, 투르 드 타이완 시합이 끝나면 3개월정도 스위스 UCI센터에 가서 사이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설레요. 더욱이 한 달에 5~6번씩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해외 선수들과의 시합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같거든요.”
사이클 입문 후 개인적인 목표의 첫 번 째 관문을 넘었고 앞으로 더 높고 험난한 관문이 남아 있다며 오늘의 영광에 만족하지 않고 목표인 런던 올림픽 입상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겠다고 당찬 각오와 함께 결의를 다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Stage 4
응원과 건투
도로의 제왕에서 제빵왕으로의 그날까지
갑작스레 받은 주목과 기대, 그리고 사이클로의 전향 후 승승장구 하고 있는 그의 이력으로, 혹은 어린 선수들이 그렇듯 그 시절에 갖는 자만심같은 것은 없을까 유심히 살폈지만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편안한 미소 때문인지, 아니면 모든 신경이 사이클 하나에만 쏠려 있어서인지 장경구 선수에게서 자만심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질문을 던져 봤다. 과연 앞으로 대적해야 할 육체적으로 앞선 서구 사이클 리스트들을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무기가 있는지를.
“다른 선수들은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휴식에 들어가지만, 저는 일부러 한두 시간 더 하는 편입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뒤처지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하니까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간은 합숙소에서 훈련에 매달리는 것이 전부에요. 거의 매달 각종 대회에 참가하여 훈련 겸 실전을 익히고 있고 대회가 없는 기간에는 피트니스 센터와 야외를 오가며 연습을 지속하고 있죠. 특히 피트니스에 신경을 쓰는데 다리에 지방이 붙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요. 종아리와 허벅지에 지방이 많으면 근지구력과 파워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피트니스와 병행하여 식단도 조정하고 있어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섭취하여 지방을 줄이면서 체중조절을 하는 것이죠.”
그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해결방법도 명쾌하게 풀어놨다. 동시에 이 대답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다.
“확실히 제가 테크닉이나 핸들 조향 능력,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떨어져요. 그러나 현재는 많은 대회를 통해 경험을 늘려가고 있고 근력 운동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체력적인 문제보다는 정신력에 있는 것같아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쉴 새 없이 훈련해 그 시기에 좋은 실력을 보이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점차 정신이 다른 데로 흩어져 성적이 좋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봐요. 반면 어릴 때 재미 삼아 자전거를 타는 서양 선수들은 커가면서 다른 데 흩어져 있던 관심을 자전거에만 집중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 스스로 자전거를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힘, 그러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경구 선수는 그것을 재차 명확하게 설명했다.
“좋아하는 수밖에 없어요. 물론 지금도 자전거만큼 즐기는 스포츠도 없고요. 그냥 즐기면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즐기다 보면 목표에 도달하겠죠. 도로의 제왕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은 제빵왕이 되고 싶어요. 이게 저의 인생 최종 목표에요.”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 옆에 조그맣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빵집을 운영하는 것. 그 빵집은 운동 선수들에게 영양식으로 먹일 수 있는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어 멀리서 운동하는 선수들에게도 빵을 만들어 보내주는 것이 장경구 선수의 꿈이란다.
웃음이 나왔다. 너무 의외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스무살 갓 넘은 장경구 선수의 사이클 제왕으로서의 길은 아직 멀다. 그리고 그의 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것밖에 없을 것같다. 응원을 보내면서. 건투하기를.
[이 게시물은 장한수님에 의해 2012-06-12 20:04:19 월간더바이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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