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렬 선수
신 동 렬
그는 정말
순수한 영혼, 오스카를 닮았을까?
“자전거는 그냥 자전거일 뿐이죠. 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게 필요하겠어요. 하늘을 날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에 이유가 필요한가요? 배가 고프면 밥 먹는 것 같은 일상, 그 일상에서 순간순간 다르게 느끼는 즐거움. 배고픈 게 채워지듯 마음이 배부르게 되는 아마 그 정도 좌표 어디쯤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editor 송해련 photo 이성규
신동렬 선수를 만났다. 30년 만에 포항, 대구 지역에 폭설이 내려 온통 흰눈밭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였다. 인터뷰를 위해 대구에서 올라온 신동렬 선수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사투리를 고스란히 내뱉으며 서울 상경의 어려움을 먼저 이야기 했다. 그러나 사실 기자는 30년 만에 내렸다는 포항의 눈 소식도, 그 눈 때문에 고생했다는 투정을 받아줄 여유도 없이 <시크릿 가든> 드라마 이야기부터 물었다.
시크릿 가든의 비밀을 말해줘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시크릿가든’에서 럭셔리한 재벌 상속남이자 백화점 CEO인 주원. 건방지고 예의 없지만 완벽한 외모를 가진, 세상에 모든 것을 다가져서 부러울 게 없는 이 재벌 상속남 역할의 현빈 소식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동렬 선수는 “전, 오스카인데요.”라며 얼마 전 촬영한 드라마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시크릿가든’ 의 다운힐 씬 촬영에 BMW SCOTT X1 Team 소속 신동렬 선수와 박철우 선수, 그리고 BMX 레이싱 국가대표 김용 선수가 대역 촬영을 했다.
양평 유명산 설매재, 정선 하이원 리조트, 김천 MTB파크, 제주도 등 최고의 장면을 위해 10 여 일에 걸쳐 촬영이 진행 되었다는 이야기에 폭 빠져 촬영 에피소드를 듣느라 함께 나누는 점심 식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현빈은 남자가 봐도 진짜 잘 생겼더라구요. 오스카 역의 윤상현은 극중 성격이 평상시와도 다르지 않은 것같아요. 평상시에도 오스카의 말투, 몸짓 그대로더라구요. 오스카 대역을 하다 보니 전 현빈보다 오스카에게 더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요. 저 이래봐도 순수한 영혼을 닮은 오스카였다구요. 구경 온 사람들이 저보고 신인배우냐고 물어보던걸요. 후후... 박진감과 스릴감 넘치는 화면을 위해, 헬리캠, 대형 크레인 등 특수 촬영 장비가 대거 투입되기도 했어요. 짧은 몇 분의 장면을 위해 10일정도의 시간과 장비 등이 투입되는 걸보면서 와, 확실한 최선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기도 했죠.”
이제는 너의 비밀을 이야기 해줄래
신동렬 선수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크릿 가든>덕에 그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조금은 쉽게 얻어냈다. 말랑해진 이야기 속에서 이제 진짜 신동렬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1987년 생. 이제 나이 25이 된 이 남자는 우리나라의 MTB XC를 대표하는 선수이다. ‘BMW SCOTT X1 Team’ 소속. ‘BMW SCOTT X1 Team’은 산악자전거의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다. XC의 최진용, 신동렬, 박철우 선수뿐 아니라 DH와 BMX에서 활약하고 있는 장재윤 선수까지 이 팀에 속해있다.
2년 전 제대를 하고, 다시 MTB선수로 돌아온 신동렬 선수는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인 것같다며 선수로서의 삶을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처음 타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던 것같아요. 걷는 게 싫어서 자전거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던 것같기도 해요. 넉넉지 않은 살림 탓에 꽤 오랫동안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 그때부터 자전거를 내내 타고 다녔죠. 그때는 그냥 달릴 수 있어 좋았어요. 달리면서 느껴지는 스피드감, 그냥 본능적으로 좋았던 것같아요.”
걷는 게 싫어 자전거를 선택했던 꼬마의 자전거는 그 이후에도 많은 변천을 거치게 되지만, 신동렬 선수가 진짜 자전거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다운힐의 강태혁 선수를 만나게 되면서 꼬마는 소년으로 성장하고, 그것도 일반 자전거로 다운힐을 즐기는 거친 소년이 된 것이다.
“우연히 인터넷으로 MTB를 쳐보니까 대구에도 MTB클럽이라는 것이 있더라구요. 태혁이 형이 만들어 놓은 커뮤니티였는데, 말이 커뮤니티지 제가 1호 회원이니까 거의 태혁이 형이 주인장과 회원인 그런 클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렇지만 형은 그 당시 꽤 유명한 다운힐러였더라구요. 형이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불러주면서 진짜 자전거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
진짜 자전거의 맛이라는 말에 다시 물었다. “자전거의 맛이 뭔데? 신동렬 선수에게 있어 자전거는 무슨 의미인데?”
그러나 신동렬 선수는 한치의 생각도 없이 “자전거는 그냥 자전거일 뿐이죠. 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게 필요하겠어요. 하늘을 날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에 이유가 필요한가요? 배가 고프면 밥 먹는 것같은 일상, 그 일상에서 순간순간 다르게 느끼는 즐거움. 배고픈 게 채워지듯 마음이 배부르게 되는 자전거는 아마 그 정도 좌표 어디쯤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또 다시 드라마 속 명대사를 적절히 인용하는 센스를 보이는 신동렬 선수에게 기자는 “어라, 이 어메이징한 남자같으니라구. 이러니 안반해?”라고 받아 치며 크게 웃었다.
신동렬 선수는 꽤 잘생겼다. 거친 산악자전거를 타는 남자와 고운 얼굴선을 가진 소년 같은 모습이 아직은 많은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여지도 함께 지니고 있다.
처음대회출전
선수로서 가능성과 도전 사이의 좌표 찾기
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이미 꽤 오래전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신동렬 선수는 본격적인 산악자전거 선수로서 입문하게 된다. 대구에서 자전거 좀 탄다는 소문이 퍼졌고, 체육교사 출신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신동렬 선수에게 전국체전 출전을 권유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전국체전에 나갔어요. 고등학교 때 주변 형들이 부품을 모아서 산악자전거를 만들어줬어요. 그래서 처음 MTB를 갖게 되었죠. 그 자전거를 타고 무주대회에 나가서 초급부문에서 6등을 했어요. 그 다음 대구 팔공산대회에서 동네 사장님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나갔는데 1등을 한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께 자전거가 좋으면 1등할 수 있다고 엄청 졸랐죠. 한 일주일쯤 단식투쟁을 했던 것같아요. 이때 처음으로 MTB자전거를 갖게 되었는데 그 때 기분은 진짜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 것같더라구요. 이때 등급을 상급자로 올려 전국체전에 나가게 되었는데, 사실 운동이라기보다 혼자 자전거를 타는 수준이었죠. 체고도 아니었고 수업 끝나면 혼자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정도였죠.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전국체전에서 XC고등부 2위를 하게 되고 2005년에는 학산배에서도 2위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수상경력이라는 게 생겨났죠.”
이렇게 그저 자전거를 좋아하던 소년은 TeamFDR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신동렬 선수가 밝힌 러브콜의 이유는 그저 “자전거를 좋아하고 늘 웃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스폰선수가 되었다고 했지만, 언젠가 전해들은 FDR의 감독의 말을 빌리면, 선수로서의 성장 가능성과 성실함, 그리고 순수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전해들은 적이 있다.
“이후, 추석때 즈음인 것같은데 일본의 재팬시리즈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2005년 재팬시리즈 아오모리 모야힐 대회에서 XC Expert급에서 1위를 하면서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된 것같아요. 돌아와서 전국체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출발부터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1등을 하게 된 거예요. 이 기회를 통해 선수로서의 확실한 자신감을 얻었고, 제가 진짜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것, 대회를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후, 신동렬 선수는 한국에서 자전거 선수로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고 했다. “하면 될 것같다고, 자전거, 이거 아니면 안되겠고, 이걸로 끝을 보겠다고”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그닥 탐탁해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은 이거 아니면 안되겠다는 말에 승낙을 하게 됐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잠시 휴학을 하고 일본행을 택했다.
“2006년 일본 스페셜 라이즈드 선수들과 같이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학교를 휴학하고 나상훈 선수와 함께 일본으로 가게 되었어요. 일본에서 6개월동안 일본대회에 참가하고 다시 돌아와 전국 체전을 뛰고 다시 군대를 가게 된 거였어요. 당시 다케야 겐지라고 스페셜 라이즈드 소속의 선수가 랭킹 1위였어요. 그 선수는 자기는 23살 때 자전거 시작했다며 어린 나이의 저에게 대회가 끝날 때마다 너는 아직 가능성을 많다는 말을 수없이 들려주었어요. 다케야 겐지 선수는 지금 마흔이 넘었지만 현역으로 왕성하게 뛰고 있고, 저도 군대를 빨리 다녀와 다시 선수로서의 삶에 충실해야 겠다는 생각에 군대를 좀 일찍 서둘러 갔어요.”
이때 신동렬 선수는 일본에서의 경험이 전해주었던 것도 많았지만 슬럼프 아닌 슬럼프의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일본 선수들과의 시스템 차이, 실력차이.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것같은 불안함으로 마음과 몸이 지쳐있음을 느끼며 군대라는 선택을 한 것같다고 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 그것은...
그리고 슬럼프가 오면 그가 좋아하는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RC자동차를 조립하고 만들며 혼자의 시간을 즐겼지만 사실, 이런 운동선수에게 있어 슬럼프는 운동으로서밖에 풀 수 없는 것같다고도 했다.
“역시 스트레스를 푸는 건 다시 자전거에 오르는 거에요. 성적이 마음대로 오르지 않을 때, 몸이 아플 때, 운동하기 싫죠. 막 전역해서는 욕심부리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다듬어 간다는 생각이 컸어요. 사실 순위에는 올랐지만 정상은 아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좀 답답해져 오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도 진짜 정상에 오르는 길은 한 번이 아니라 꾸준히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저에게 투자하는 기간이죠. 얼마 후 최진용 선수와 함께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가요. 개인적인 사비를 털어서 가는 것이지만, 또 한번 새로운 경험과 에너지가 저에게 쌓일 것이라고 확신하죠.”
아직 성장을 하고 있는 신동렬 선수.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 이 선수에게서 분명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그리고 그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강태혁 선수, 그의 어깨를 토닥였던 다케야 겐지가 보았던 가능성이 느껴졌다.
가능성과 도전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선수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신동렬 선수는 마지막으로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가 아닌 꽤 사랑스런 아들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살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에요. 가장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도 아버지죠. 저희 부자는 사실 말이 없어요. 그냥 가끔 아버지께서 저에게 보내주시는 눈빛, 짧은 전화 문자가 다이지만, 어쩔 때는 마음이 뭉클해져요. 얼마전 해가 바뀔 때 아버지께서 올해는 토깨해니까 너의 해로 만들라는 문자를 보내셨더라구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감사했던 것같아요.”
걸러지지 않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책을 읽듯, 천천히 자신을 이야기하는 이 선수, 본인은 겁이 엄청 많은데 자전거를 타면 겁이 없어진다며 자전거를 통해 인생을 말하고 싶다는 신동렬 선수에게 꿈을 물었다.
“오래 자전거를 타는 거에요. 그리고 점프하는 것보다 부상 없이 한 단계 한 단계 저를 만들어 가는 게 꿈이에요. 지금은 MTB선수에서 사이클 선수로 그 목표를 두고 있어요. 사이클의 매력도 크고 또 무엇보다 국내외적으로 선수로서의 성장 폭도 넓기 때문이에요. 외국 프로사이클팀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 저의 가장 앞선 목표이자 현재로서의 꿈이죠.”
자신이 성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며, 개인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지금은 스스로에게 아낌 없이 투자를 할 때라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신동렬 선수는 이제 조금 있으면 스페인으로 훈련을 떠나 조금 더 어른이 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될 것같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드라마 속 오스카보다 더 멋진 남자로, 그리고 한류 스타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할만한 선수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이 게시물은 장한수님에 의해 2012-06-12 20:04:19 월간더바이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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