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성, 도전이 있기에 그가 있다
조호성의 올림픽 도전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시작됐다. 이번 런던올림픽까지 16년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조호성은 부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뒤 2004년 갑자기 돌연 경륜으로 전환해 경륜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꿈은 경륜생활을 하면서도 가슴속 깊은 곳에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남겨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내 최초 올림픽 메달을 향한 도전이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사이클 훈련장소가 있는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하루에 4~5시간씩 혹독한 훈련을 했다. 매일 매일 달린 거리가 무려 150km, 1년 동안 120,000km를 달린 샘이다. 2011년에 열린 UCI 트랙월드컵 옴니엄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독하게 훈련해도, 철저히 관리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최종 성적은 11위에 그쳤지만 꿈을 향해 달려온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도전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경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리고 준비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경륜에 눈을 뜨게 된 이유는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하면서 회의를 느낄 때쯤이었다. 그때마다 내 눈에는 경륜이라는 종목이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몸에 익힌 사이클이라는 점이 어떻게 보면 경륜이라는 새로운 부문에 도전하기가 좀 더 쉬운 편이였다. 경륜을 하면서도 올림픽 메달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며 경륜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경륜을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사이클은 마라톤, 경륜은 단거리 종목이다. 처음 경륜을 하게 되었을 때 체중을 불리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그 당시 체중이 67kg 정도였으며 당장 17kg을 늘려서 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훈련원 신분으로 경북 영주에 있는 경륜훈련원에서 10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 과정은 정말 너무 힘이 들었다. 처음 접해보는 훈련이고 처음 접해보는 종목이기 때문에 훈련 강도도 높았다. 주위 후배들과 경륜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고 1년간은 슬럼프 아닌 슬럼프도 겪었었다. 아마추어에서 경륜으로 갈 때 주위에서 반대와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시선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극이 되어 더 오기가 생겼다. 그 결과 많은 승리를 할 수 있었다. 경륜을 비롯하여 선수생활을 하다보면 가족들과 자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힘들 때마다 팔에 새겨진 가족들의 이름을 보며 멀리 떨어져 있어도 힘을 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본다.
경륜선수를 은퇴하고 올림픽 메달을 위해 아마추어가 되기까지 과정은?
2004년도부터 2008년 12월 31일까지 경륜생활을 하면서 5년이란 공백을 가졌다. 아마추어 선수로 복귀할 때 적응하기 힘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가 가장 큰 문제였으나 다행히 서울시청팀의 정태윤 감독님 덕분에 복귀할 수 있었다. 5년이란 시간동안 사이클 쪽을 떠나 있어 그 기간 동안 자전거 문화는 변해 있었고 프레임이나 장비들도 향상되고 접해보지 않았던 부분을 새롭게 알아 가야 했다. 또 후배들의 기량이 많이 향상이 되어 경쟁도 치열했다. 5년이란 공백을 메우고 적응하는데 짧으면 짧고 길면 긴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 게임을 계기로 몸이 완전하게 적응하게 되였다.
주 종목인 포인트 레이스가 없어져서 아쉽지 않았나?
그리고 옴니엄 종목은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나?
만약 포인트 레이스로 치러졌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르겠다. 이틀간 여섯 종목을 뛰는 옴니엄은 실제 대회를 접해보니 체력적인 부담이 많았다. 하지만 연습했던 종목이기 때문에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포인트 레이스는 하루에 한 종목씩 했지만 옴니엄은 이틀간 여섯 종목을 해야 된다는 점에서 체력적인 부담이 컸고 한 종목만 실수해도 메달권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준비과정은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시합이 다가오면서 너무 신경 쓰고 부담을 느꼈는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 같아 아쉽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도전이라 나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세계 선수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출전 소감은?
12년 만에 올림픽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후배들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다. 운동선수들은 과정이 좋아도 모든 것을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크게 후회도 없고 아쉬운 부분도 없다. 조금 더 결과가 좋았다면 대한민국 사이클 부분과 국내 자전거 산업에 더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2009년부터 4년이란 시간이 10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었다. 런던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운동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집중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후회 없이 페달을 밟은 것 같다.
좀 더 젊었을 때 메달에 도전했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
시간이 지나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불혹을 향해 가는 몸은 아무리 철저히 관리한다 해도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비록 꿈이지만 경륜이라는 업적과 사이클 인생 경험에 많은 캐리어가 쌓였기 때문에 큰 아쉬움은 없다. 만약 그 당시 메달에 도전했다면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경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경륜이라는 종목이 빠른 스피드와 매력이 있지만 처음 시작하는 것이 많이 힘들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실패를 많이 겪었다. 이런 힘든 과정을 모두 이겨낸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경륜은 본인 자신에게 한만큼 성과를 주고 대가는 돌아오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한다면 경륜 정상의 자리에 분명히 오를 것이다.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국내 사이클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최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만족해 있는다면 분명히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무대에서 항상 변방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노력한다면 머지 않아 대한민국 사이클도 올림픽에서 메달이라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기 바란다.
현재 근황은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는?
양양에서 합숙훈련에 들어갔으며 오전에는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마사지를 받으며 쉬고 있다. 틈틈이 가족들도 만나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있다. 우선 다음달 10월에 대구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에 몰두할 예정이며 앞으로의 계획은 천천히 생각하고 있다. 다시 선수생활을 할지 은퇴를 하고 제2의 인생을 갈지 여부는 아직 미정이다. 몇 가지 생각은 해봤지만 뚜렷하게 구체적으로 구상만 해놓았다. 전국체전 이후에는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MTB 쪽에도 관심이 있다. 9월 중순쯤 최진용 선수 그리고 나상훈 선수가 세계선수권 마치고 오면 개인 레슨 받을 예정이다. 일단은 올림픽에서 못보여준 결과를 국내에서 가장 큰 대회인 전국체전에서 노력하여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다면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 노력한 만큼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안전하고 즐겁게 라이딩 하기를 바라며 한국 사이클 선수들이 다음 올림픽에서 꼭 선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바이크 2012년 10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조호성씨의 더 자세한 인터뷰는 더바이크 10월호 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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