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은, 나의 두 번째 사이클 이야기가 시작되다
사실 2012년 11월 15일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서명을 하고 나서야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첫 프로 데뷔라는 점에서 주변에서 부담감이 크지 않느냐고 많이 묻곤 하지만 부담감은 많지 않다. 오히려 외국선수들과 함께 시합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함이 더 크다. 물론 내가 잘 해야지 후배들에게도 또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서도 좋은 결과로 대한민국과 나를 위해 응원해주는 팬들의 성원에 꼭 보답하겠다는 각오는 날마다 커진다.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그린엣지 ORICA-AIS팀을 좋아했었다. 2012년 5월 달에 중국에서 열린 투어 오브 총밍에서 ORICA-AIS팀이 출전했었다. 당시 그린엣지 팀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나 또한 같은 팀에서 활동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한 사이클 연맹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외국팀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린엣지 ORICA-AIS팀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꿈의 팀에서 활동하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현재 몸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2013년 1월 13일에는 호주로 출국할 예정이다. 2013년 1월 20일부터 27일까지 세계적인 이벤트인 Santos 투어 다운 언더(Tour Down Under) UCI 월드 투어가 열린다. 경기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팀 프레젠테이션과 트레이닝에 합류해 훈련하면서 26일까지 있을 예정이다. 이벤트가 끝난 후에는 잠시 한국에 다시 들어와 출국 준비를 하게 된다. 팀 합류를 위해 이태리에 위치한 그린엣지팀의 베이스캠프로 떠난 뒤 그린엣지에서 시즌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는 2013년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귀국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박사학위가 과연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체육학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현재 수료는 했고 이제 논문 합격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 사이클 선수 대부분이 결혼 후 운동을 그만 두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자주 봐왔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선수생활을 그만두더라도 지금까지 공부한 것, 그리고 앞으로 더 공부해서 사회에서 좀 더 의미있는 일로 확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시합 날 앞이 보이지 않고 발이 잠길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나는 중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오르막에서 길이 갑자기 좁아졌다. 선수들은 서로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순간 내 옆의 선수가 넘어지면서 나와 부딪히게 되었다. 그로인해 클릿이 빠지면서 중심을 잃었고, 배수로 쪽으로 자전거가 향했다.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벽을 짚었지만 자전거가 빠지면서 나 역시 빠져버렸다. 다행히 물과 진흙이 많아 큰 부상은 모면했으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앞 그룹은 벌써 눈앞에서 없어진지 오래였다. 뒤를 보니 회수차가 따라오면서 빨리 포기를 하란 듯 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고 완주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간이 지나고 외국선수들을 하나, 둘 제치고 지나갔다. 외국선수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지만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목숨 걸고 타지 않는다. 에이스만을 위해 그들은 희생을 하기 때문이다. 혼자 달려서 그런지 그날 시합은 많이 외로웠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국내에서는 내 나이가 다들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까지 자전거를 탈것이냐,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 이런 질문부터 받는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내 나이가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ORICA-AIS팀에 들어가면서 나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사이클은 직업이기 때문에 타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타는 것이다. 사이클을 타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만약 선수를 그만둬도 사이클은 계속 탈 것이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운동에 전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없을 것이다. 실업팀에 있을 때 주위에 남자친구 있는 선수들을 보면 매일 전화기 붙들고 문자 보내고 싸우고 너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목표가 있었다. 매년 매 시합마다. 목표를 가지고 선수생활을 하다보니까 남자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세계무대에서도 활약상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많지 않다. 나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일단 ORICA-AIS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기력을 길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 메달을 획득하고 싶다. 또 다른 하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된다면 실업팀이 아닌 클럽팀을 만들고 싶다. 어린 선수들부터 시작하여 중고등학교까지 나아가 실업팀까지 훌륭한 선수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지난 5월에 발생한 상주 도로사고 이후 차도에서 훈련을 할 때마다 겁부터 난다.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고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긴장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혼자서 도로훈련을 나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혼자 도로 훈련을 하지 않는다. 차가 위협하고, 클락션을 울리기도 하고, 도로 위에서 훈련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외국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차량과 자전거가 1.5m 간격을 두어야 되는 법이 있다. 차량을 운전하는 외국인들 역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전거에 대한 인식, 정서가 외국보다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존경하는 선수이다. 하지만 도핑으로 인해 자격이 박탈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고등학교 때 암스트롱 책을 처음 보았다. 책을 보면서 “고통은 순간이다.” 라는 명언을 보면서 훈련해왔다. 어제도 암스트롱 동영상을 보고 롤러 트레이닝을 했다. 나는 여전히 그를 믿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만나서 진실을 듣고 싶다.
최근에 내 이력을 보고 상무를 왜 갔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다. 2003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많은 실업팀의 러브콜이 이어졌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실업팀보다는 엄격한 훈련여건의 상무팀이 나에게 더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당시 국군체육부대가 국내에서 최고였던 점도 상무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지도자와 팀 분위기 때문이다. 팀 선택에서 고민을 하던 차에 박정숙 감독님은 UCI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시면서 감독님을 믿고 상무로 오라고 권유하셨다. 여자들끼리 있는 곳보다는 남자들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 남자 선수들과 주로 타서 그런지 사이클 타는 스타일이 남자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나에게 있어 상무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도록 해준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일 뿐 결코 후회는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최혜경 선수가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은퇴를 해서 현재는 내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주위에서는 아직까지 자전거 타냐는 분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선수기간을 너무 짧게 본다. 그리고 남자선수들은 경륜 때문인지 더 그렇다. 얼마 전에 그린엣지팀에서 미팅할 때 남자선수들도 받고 싶다고 했지만 UCI 센터에서 최소 1년 이상 버티는 사람을 원했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이 없어서 아쉬워했다.
사이클 선수들 보면 대부분 현재 만족하면서 운동하는 선수들이 많다. 꿈은 가지고 있지만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많이 안타깝다. 선수들이 본인이 원하는 꿈이 있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꿈을 계속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열정을 더한다면 본인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전반적인 사이클 인기가 높아졌고, 직접 사이클을 타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했지만 사이클선수에 대한 관심은 제자리이다. 조금 더 선수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다면 국내 사이클은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호인들과 선수들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나마 최근에는 페이스북 덕분에 선수들과 동호인들이 서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선수들을 응원해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은 선수들도 배출될 것이고 국내 사이클 문화도 더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성은 선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