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SHORE - 나무작업 레슨 [더바이크]
NORTH SHORE - 나무작업 레슨
에드는 전설적인 크루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밴쿠버의 노스 쇼어 트레일을 라이딩하며 새로운 MTB의 역사와 자전거의 컨트롤을 만들어간다
글 에드 톰셋(Ed Thomsett) 사진 루벤 크래브(Reuben Krabbe)
MBUK에서 일하며 프로라이더들을 만나는 일이 익숙해졌지만 오늘은 좀 더 특별한 날이다. 오늘 나는 웨이드 시몬스, 조프 굴리비치, 토드 ‘디거’ 피안더와 밴쿠버 노스 쇼어의 마운트 프룸을 타고 있다. 전설적인 프리라이더 2명과 세계적인 수준의 코스 제작자와 함께라니, 우리가 좋아하는 이 운동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난 크랭크드 그리고 뉴 월드 디스오더 시리즈를 보고,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트레일을 타면서 자랐다. 특히 말도 안되는 나무다리와 절벽의 드롭, 거의 수직의 코스는 노스 쇼어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 존 깁슨과 스털링 로랜스의 사진은 지금 보아도 매력적이다. 불규칙한 나무의 모습과 들쭉날쭉한 야생의 바위 그리고 안개로 쌓인 고대의 숲을 보여주는 듯하다.
새로운 땅으로
오늘 내가 서 있는 곳의 밴쿠버 시내의 물가 건너편에는 숲이 우거진 슬로프가 있다. 90년대 산악자전거의 주류에서 멀리 숨겨져 있던 디거와 같은 선구적인 트레일 빌더는 나무판자를 통나무에 묶어놓고 삽질을 해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라이딩을 만들어냈다. 노스 쇼어에서만 볼 수 있는 산악자전거의 극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저는 숲의 한가운데로 들어갔고 거기서 트레일 빌딩을 시작했습니다.” 디거의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가장 유명한 “레이디스 온리(여성 전용)”라는 이름의 트레일도 포함되어 있다. 이름이 숙녀 전용이지 아주 걸작이다. 토드는 1980년대부터 트레일 빌딩을 시작했다. 그가 1992년 여성 전용을 완성했을 때, 롤, 시소, 통나무 등을 넣어서 코스를 만드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1km 이상의 긴 다운힐도 처음이었고 26년이 지난 오늘도 많은 라이더들이 코스를 즐기고 있다. 속이 빈 나무, 상당히 휘어진 교량과 롤아웃까지. 90년대 초반 하드테일로 이 코스를 탔다는 것이 상상이 안되는 상황. “여기를 처음 라이딩 했을 때의 모든 기억이 남아있어요.” 걸리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 디거의 장인정신에 푹 빠져 버렸다. 디거는 옆에서 웃음 지으며 바라볼 뿐. 사람들이 그의 코스를 보고 즐기는 것이 트레일 빌딩에 있어 원동력이 된다고. “저는 그저 독특한 것을 생각하고 빌드하죠. 자연의 특징을 사용하려고 하고요. 코스를 보고 이걸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하면 만들고, 친구들과 즐겼죠. 그렇게 점점 많은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무 사다리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디거는 이를 “게토 램프”라고 부른다. 그저 목재를 잡고 한쪽을 트레일에 고정하고 띄운 것이었죠. ‘와, 이거 좀 무서운데!’ 정도의 느낌이었고 점점 땅에서 떨어지고 올라간 거죠. 제리 윌로우, 댄 코완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의 구조물과 높이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산악자전거는 온전히 90년대 MTB 레이싱에만 집중이 되어있던 때. 프리라이딩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을 즈음이다. 웨이드 시몬스, 브렛 티피 그리고 리치 쉴리 등이 스노우 보딩의 영감으로 아주 거친 자갈 지형을 타고 캠루프(Kamloops)와 로스랜드(Rossland) 등에서의 카빙 턴과 드롭을 선보였다. 그리고 바로 얼마 후 이는 북부 밴쿠버의 트레일로 전해진다.
내가 본거 봤어?
우리는 20cm 정도의 널빤지를 올려다보았다. 공중 4m쯤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 위에 균형잡힌 시소가 있고 이것이 저 아래 숲까지 이어진다. 이는 ‘플라잉 서커스’의 마지막 부분 중 하나이다. 댄 코완이 만드는데 2년이 걸렸고 98년 완공되며 쇼어에서 만들어진 가장 미친 코스중 하나가 되었다. 엄청나게 좁고 어려워 몇몇 엘리트만 이를 탈 수 있었다. 라인의 대부분이 덤불속에서 썩어가고 있지만 이는 댄과 초기 노스 쇼어 라이더들이 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우리는 더 이상 서커스 코스를 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디거를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거대한 이끼가 낀 코스를 보았다. “이걸... 타셨어요?.” “미쳤어? 아니지, 난 그저 만들어내는거지.” 그가 웃었다. 45세의 아저씨가 나타나서 우리를 안내했다. 숲을 나아가니 30m 짜리 나무 벽과 만났다. 녹조류가 있었고 뒷바퀴 충격을 받는 지점은 점점 닳아 패여있었다.
성공과 실패
이런 엄청난 곳을 기록하는 것은 노스 쇼어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디거는 캠코더를 헬멧에 달고 동료를 따랐다. “난 테이프에 담긴 수백시간의 작업을 보고 딥 코브 자전거 숍에서 TV를 보고 놀았어. 그런데 어떤 남자가 이를 보고 ‘와우 멋진데 살 수 있을까?’ 라고 우리에게 물었지.” 그리고 이것이 노스 쇼어 익스트림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였다.
프리라이드 영상 제작이 늘었고 기술의 수준도 높아졌다. 우리는 걸리가 세이무어 산에 있는 ‘토니 드롭’을 하는걸 봤다. “난 하루에 3번 하고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다행히 그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이 엄청난 50피트나 벌어진 갭은 각도마저 엄청나 ‘대퇴골 갭’ 이라 불렸다. 1998년 공개된 영상중 하나인 ‘크랭크드 1’은 웨이드 같은 라이더의 경력을 만들어냈고 노스쇼어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밴쿠버 당국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98년 그들은 사이프러스 산의 장애물을 줄이기로 했고, 라이더들이 결속해 NSMBA(노스쇼어 마운팀 바이크 연합)을 만들었다. 이 단체들은 트레일을 합법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는 3개의 산을 엮은 광범한 네트워크를 일구어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쇼어 스타일은 계속 진화해 왔다. 초기 트레일에서는 플로우를 찾기가 힘들었고 타이트한 텀과 좁은 드롭이 있었기에 라이딩이 쉽지 않았다. 헤드 튜브가 점점 뒤로눕고 체인스테이가 변화하면서 브리티시 콜롬비아는 다시 활기를 얻고 있다.
“우리가 바라던 디자인이에요.” 디거가 말한다. “우리는 큰 드롭을 만들고 보다 큰 포크가 나오고, 좁은 트레일을 위해 핸들바가 좁아지기도 했죠.” 여기서 뒤로 기운, 짧고 가파른 헉(huck) 바이크가 만들어졌다. 아주 높은 BB와 로치 스템 패드까지. 나를 포함한 2000년대 초반 프리라이더에겐 추억이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자전거가 나오고 있다. 더이상 레이스를 꿈꾸는 라이더가 아닌 보다 재미있는 라이딩과 영상을 위한 자전거 말이다. 록키마운틴은 레이스가 아닌 라이딩을 위해 프로를 선택한 최초의 브랜드이다. 시몬스, 티피 그리고 쉴리와 함께 “프로(Fro) 라이더” 라는 프리라이더를 만들었다. 새로운 라이딩이 태어난 것. 쇼어는 유명한 이름이 되었고 앤드류 샌드로와 토마스 반더햄까지 태어났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것들이 변했다. 기술이 진화했으며 라이딩 스타일도 바뀌었다. 다양한 스타일의 트레일이 생겨났다. 프룸이나 사이프레스, 세이무어 같은 라이더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코스지만 지금은 바이크 파크의 혁명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달린다. 범프를 타고 타이트한 턴과 숲을 달린다.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거예요. 왜 속도를 낮추냐고? 난 아직도 이런 좁은 코스가 좋아요.”
최신 엔듀로 바이크는 좁은 사다리를 타는 것 보다 레일을 따라 달리는 봅슬레이 스타일을 달린다. 하지만 오리지널 클래식인 7th 시크릿, 북와스, 그래니스, 리퍼 같은데는 아직도 이런 코스들을 선보인다. 하지만 오리지널은 변하지 않는다. 디거는 지금도 땅을 판다. 그는 무릎에 문제가 있어 카메라도 헬멧에 달리는 액션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확실한 것은 그는 여전히 산악자전거를 사랑한다는 것. 만약 노스 쇼어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면 잠시멈춰 “안녕하세요. 디거!” 라고 인사를 해보자. 노스 쇼어에서는 아직도 그의 트레일이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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