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재 선수
Boy에서 Man으로
Man에서 Human으로의 성장
장선재 선수
장선재 선수는 지난해 11월 14일 광저우 아시안 게임 사이클 남자 4㎞ 개인추발 금메달 결정전에서 4분30초298 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청킹록(홍콩·4분37초543)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추발에서 우승했던 장선재 선수는 이로써 2개 대회 연속으로 이 종목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4Km 단체 추발전에서 4분 7초 872를 기록하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이제는 아들과 형, 남편, 아빠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장선재 선수를 만났다.
editor 송해련 photo 이성규
2 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리고, 사이클 스타로 떠오른 장선재 선수를 찾는 각 매체의 러브콜은 끊이질 않았다. 더구나 뮤지컬 배우와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더욱 높았다. 취재를 위해 섭외 전화를 건 당시에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 후 곧, 팀으로 복귀해야 한다며 바쁜 스케줄을 이야기했다.
그를 만나러 대한지적공사의 팀 숙소가 있는 충북 음성으로 내려갔다. 아침 훈련을 마치고 편안한 복장으로 기자를 맞았지만, 그가 처음 내놓은 말은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부담부터였다.
그의 나이 27. 이 젊은 청년이 견뎌내야 하는 것은 사이클의 스피드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시안 게임 3관왕에 이은 광저우아시안게임 2관왕의 타이틀, 사이클 3부자라는 수식어와 이제 곧 한 여자의 남편과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사실은 벅찬 행복인 동시에 또한 부담인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밝은 웃음을 내보이며, 다음의 목표를 먼저 이야기했다.
“한국신기록 10번, 장씨 집안 아시안게임 금메달 10개가 목표에요. 사실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 출전 이후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결혼도 앞두고 있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한 6년간은 끊임없이 달려야 할 것같아요.”
장선재 선수는 지난해 11월 14일 광저우 아시안 게임 사이클 남자 4㎞ 개인추발 금메달 결정전에서 4분30초298 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청킹록(홍콩·4분37초543)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추발에서 우승했던 장선재 선수는 이로써 2개 대회 연속으로 이 종목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16일에는 조호성(서울시청), 황인혁(금산군청), 박선호(서울시청)와 함께 출전한 4Km 단체 추발전에서 4분 7초 872를 기록하며 홍콩(4분 10초 859)를 제치고 우승하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미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수영의 박태환과 함께 3관왕 업적을 달성한 선수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5개나 보유하는 기록을 소유하게 되었다.
어느새 그는 사이클 간판 스타로 급 부상해 있었고, 사이클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소년의 모습을 벗고 한 남자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4년 전, 장선재 선수를 처음 만났을 때, 장난기 많고 앳된 모습으로 팀의 분위기를 이끌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들과 형, 남편, 아빠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어른이 되어 있는 듯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 가족
잘 알려져 있듯이 장선재 선수는 한국 사이클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궜던 장윤호 감독의 아들이다. 그러나 장윤호 감독은 장선재 선수가 사이클 선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아주 어린 시절, 자전거 위에 장선재 선수를 올려두고 함께 자전거를 타던 기억, 누구보다 자전거와 가까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자전거에 오르는 것을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고 옛 기억을 추억했다.
“사이클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할 수 없었어요. 수영과 태권도만 5년 정도 했었죠. 그런데 사이클이 너무 하고 싶더라구요.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6학년 시험에서 3등 안에 들면 사이클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는데 3등 안에 들면서 시작하게 된거죠. 사이클을 허락한 이후에 아버지는 왕복 80km나 되는 거리를 사이클을 타고 통학하도록 지시했어요. 새벽 6시에 기상해 하루 중 식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끊임없는 연습과 근육 강화 훈련을 하면서 지냈죠.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이세요. 조금 유머스럽고 풀어줄 때는 풀어주는 감독님이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이후 장선재는 구리 동화중 1학년 때부터 페달을 밟기 시작하여 의정부공고 3년 때 주니어 국가대표가 되었고, 도하대회와 이번 광저우대회로 한국의 간판선수로 성장했다.
최고의 자리에 그토록 빨리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기질, 타고난 재능 때문일 것같다고 했더니 장선재 선수는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은 신체적으로 사이클에 적합한 체형이 아니며, 자신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가족의 지원과 자신의 노력이라며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제 생각에 성공을 위해서는 경험과 재능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상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분석하여 모자란 부분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저는 어쩌면 운이 좋은 케이스라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수월하게 경력을 쌓아왔고 특히 운동 초기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의 조언과 지도를 받았으니까요. 가족이 저에게 주었던 그 모든 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의 아버지이자 감독,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역할을 맡아온 장윤호 감독은 장선재 선수를 오늘에 있게 한 장본인이지만, 더불어 어머니와 동생인 장찬재 선수도 그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들이다.
이들의 가족사에서 사이클 3부자라는 타이틀이 빠질 수 없듯이 동생인 장찬재 선수도 현재 한국지적공사에서 함께 선수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가족이 한 팀에서 활동하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책임이 더 무거워진 만큼 훈련을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어 주기도 했다.
장선재 선수의 동생 장찬재 선수 역시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엘리트 선수로 쑥쑥 자라나는 유망주다. 비록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미 고등학교 3학년 때인 지난 2002년 주니어 대표선수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가 4㎞ 단체추발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07년에는 실업팀 입단 첫해부터 국가대표로 뽑혀 삼부자가 모두 태극마크를 다는 겹경사를 누리기도 했던 이들 세 부자는 지금도 대한지적공사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고 경기를 치르며 아름다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매일같이 경기나 훈련 등으로 집을 비우기 일쑤인 삼부자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어머니 김인곤 씨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사이클이 뭔지도 모르고 장윤호 감독과 결혼한 김인곤 씨는 큰아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도로훈련할 때 뒤에서 차를 몰고 따라다니며 훈련을 도와줄 정도로 열성적으로 힘을 불어넣었다.
이날 최종 결승을 마치고 관중석으로 다가가 울먹이는 어머니를 꼭 끌어안아 준 장선재 선수는 “동생 찬재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발전에 탈락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다음엔 꼭 함께 달렸으면 좋겠다”고 어머니를 위로했다고 했다.
장선재 선수의 성장의 흔적들
영광의 뒷 모습에 자리한 고통과 희망
이러한 영광의 모습 뒤에는 가족 모두의 희생이 있었고, 한창 즐기고 싶을 나이에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훈련을 감수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선재 선수는 일요일은 물론이고, 눈, 비가 오는 날에도 사이클 타는 걸 멈춰본 적이 없었다. 체중 조절을 위해 좋아하는 햄버거랑 아이스크림은 물론, 술자리도 일부러 피해 다녔다. 그렇게 혹독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연습에 몰두한 결과 지금의 결과를 이루어 낸 것이다.
더구나 현재는 전성기에 올라선 장선재 선수이지만 항상 상승 곡선만을 유지했던 것도 아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허리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실패를 통해 밑바닥까지 갔다오는 고통으로 슬럼프를 이겼다”고 밝혔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르면서 전성기를 맞이했죠. 하지만, 그 이후로 슬럼프에 빠지면서 도하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극심한 슬럼프가 계속되면서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어요. 이런 슬럼프를 이기는 방법 역시 훈련이었어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다른 대회는 포기하고 오로지 아시안게임만을 위해 집중했죠. 봄에 열린 아시아선수권과 국가대표 선발전, 그리고 아시안게임 전초전 격이었던 전국체전에만 출전했어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전 종목을 휩쓸었고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열린 전국체전에서도 8연패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죠.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정말 많이 준비해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쳤고 순위보다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목표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 속에서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가끔 추운 날 아침에는 훈련을 시작하기가 상당히 힘들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면 마음이 달라졌어요. 항상 새롭고 흥미로운 운동을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훈련을 복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장선재 선수의 훈련 방법은 기술적인 훈련도 중요했지만 체력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도하아시안게임 전까지는 체력훈련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아버지인 장윤호 감독의 조언으로 최근에는 체력훈련에 60~70%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사이클 훈련에 전념하는 방법을 택했다.
“근력과 체력이 강해야 힘을 쓸 수 있죠. 외국 선수들은 기어를 무겁게 쓰는데 국내선수들은 가벼운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힘과 체력이 좋아져서 무거운 기어를 쓰니 속력이 빨라졌고 아시아신기록도 세우게 됐어요”
강한 체력은 물론, 체지방을 없애기 위해 식이요법도 철저히 했다. 장선재 선수는 “사이클 선수에게 라면과 햄버거는 꿈의 음식”이라며 웃어 보였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일주일동안 라면과 짬뽕, 그리고 햄버거만 먹었습니다. 평소에 워낙 접해보지 못한 음식이서 그런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별로 입에 당기지 않더라구요.”
그의 피앙새 김다희씨를 웨딩화보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결혼을 앞둔 예비 가장,
‘가족’을 위해 2014년까지 페달 밟는다
다가오는 2011년은 장선재 선수에게 특별한 해로 다가오고 있다. 바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장선재 선수와 김다희씨의 만남은 장선재 선수의 선배 조호성 선수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조호성 선수의 아내인 뮤지컬배우 황원경 씨의 제자인 김다희 씨를 장선재 선수에게 소개시켜준 것이다. 뮤지컬배우이자 피팅모델인 김다희 씨와 2011년 1월 9일 올림픽파크텔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으로 있다. 그리고 장선재 선수는 내년 7월이면 한 집안의 가장이 되는 ‘예비 아빠’이기도 하다.
“원래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팀에만 전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이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사실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우선은 2년 뒤에 열리는 런던올림픽 출전에 주력할 예정이고 그 다음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이클의 장점은 선수생명이 길다는 점인데 지금이 저의 최전성기인 것 같아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장선재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기가 들어가는 풍선처럼 커져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아버지가 획득한 금메달까지 합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10개 소장하는 것이 장선재 선수의 꿈이다. 또한, 장선재 선수는 지금까지 9번의 한국 신기록을 갱신해왔다. 한 번 더 갱신하면 홀로 10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버릴 수 없는 목표는 ‘올림픽’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이클이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한 적은 없었다. ‘백전노장’ 조호성(36, 서울시청) 선수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4위에 올랐던 것이 한국 사이클이 기록한 최고의 성적이었다.
“트랙 사이클 최강 국가는 영국입니다. 그리고 호주도 막강하죠. 세계의 벽은 결코 쉽지 않지만 기록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으니 분명 올림픽 메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입니다”라며 앞으로 다가오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의 선전을 기대했다.
“지금은 2011년 1월 21일에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에서 5위권 안에 들어야 2월 말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어요. 2014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해 아시안게임 3연패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물론, 올림픽도 꼭 출전해야겠죠”
가족 모두가 사이클 하나만을 생각하고 달려온 장선재 선수와 그의 가족은 한국 사이클 역사상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페달을 밟은 명가 반열에 올랐고,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기대가 되는 가족이 되었다.
이제 소년의 모습을 벗고, 한 남자로, 그리고 휴먼으로 성장하는 장선재 선수에게 더욱 큰 박수를 보내주어야 할 때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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