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우 대표
극한의 순간에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PBP(Paris-Brest-Paris) 1200km
한철우 대표가 PBP(Paris-Brest-Paris)를 마치고 돌아왔다. PBP에 참가해 1,200km의 장거리 레이스를 80 시간 만에 완주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1200km의 길 위에서 그가 발견한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청했다.
editor 송해련 photo 이성규 자료제공 한철우
사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일상에서 무언가 도전하지 못하는 것,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일상의 무게를 핑계로 새로운 인생,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을 늘 뒷전으로, 혹은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살아간다.
한철우 대표를 만난 것은 몇 달 전 피팅 기사의 테스터로 도움을 받으면서였다. 그때 잠시, 그가 올 여름 PBP(Paris-Brest-Paris)에 참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늘 무언가에 도전하고 자신을 일상 속에 파묻혀 지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임은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통의 메일이 전해졌다. 그가 PBP(Paris-Brest-Paris)에서 돌아왔다는 메일이었다. 여름의 지루한 장마 속에서 한줄기 강렬한 태양이 다시 비춘 것같은 쨍함. 인생에 있어 빛을 발하는 순간을 경험했을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다.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에요. 아직 레이스의 여운이 남아 있는 것 같네요.
돌아온 지 일주일쯤 지났어요. 많이 회복되기는 했는데 생각했던 일정들이 흐트러지면서 피곤이 겹친 것 같아요. 사실 이번 PBP(Paris-Brest-Paris)는 올해 저에게 주는 여름휴가라고 생각하고 레이스 후에 며칠 프랑스에서 휴식을 가질 예정이었어요. 조금은 여유롭게 프랑스의 풍경들을 즐기고, 좋은 와인과 음식도 함께 하고 싶었죠. 그런데 가기 전부터 일 때문에 출국일정을 늦춰 경기 전날 도착해서 경기가 끝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컨퍼런스 발표를 하게 돼서 물리적, 시간적으로 더 피곤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입니다.
PBP(Paris-Brest-Paris)는 아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는 레이스라 생각되는데, 어떤 레이스인가요?
한국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레이스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아주 유명한 레이스 중의 하나에요. 4년에 한번 매년 8월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레이스로 100 년의 역사를 가진 대회라고 하네요. 세계의 많은 랜도너스들이 파리-브레스트-파리를 달리는 1200km 레이스에 도전하는 경기에요. 랜도너스 (Randonneurs)는 200km에서 1200km 사이의 장거리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인내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1,200km의 장거리 레이스를 90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경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같네요. 올해는 8월21일부터 25일까지 대회가 개최되었어요.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한 자격이 있나요?
PBP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한국랜도너스가 주최하는 200, 300, 400, 600k Brevet 시리즈를 모두 완주해야 해요. 한국랜도너스는 2009년에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첫 Brevets은 2010년에 개최되었어요. 저도 이 랜도넌스 전 시리즈를 마치고 슈퍼 랜도너로서의 자격을 얻었죠. 처음으로 "슈퍼랜도너" 자격은 한국인으로서는 4명이 최초의 자격을 얻었어요. 16일 동안에 걸쳐, 총 거리 1,500km, 누적고도 13,000m에 이르는 4개의 장거리 라이딩 (Brevet) 을 완주했습니다. 때로 영하에 이르는 추운 날씨 속에 긴 야간 주행을 하여야 했고, 보름달 아래 남해의 해안가를 즐기기도 했는데, 이때 사이클의 묘미에 좀 더 깊게 빠지게 된 동기가 된 것 같아요.
금융컨설팅 업체인 CMPR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한철우 대표는 2007년 TDK를 통해 사이클로 입문했다.
자전거는 오래 타셨나요?
어릴 때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MTB로 자출을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그러다가 2007년 TDK가 처음 열리면서 참가하고 싶은 마음에 사이클을 주문했죠. 대회 전까지 MTB로 연습을 하다가 대회 일주일 전에 주문한 사이클을 받아 대회에 참가했어요. 서울대 파아란팀으로 함께 출전했는데 그룹 라이딩의 경험도 별로 없고 사이클에 적응도 되지 않아서 무척 힘들고 위험한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나인스타에 등록했고 첫 대회 출전치고는 개인적으로도 만족할만한 대회였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사이클을 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타고 있어요.
지금 하고 일은 어떤 일인가요? 일과 사이클의 취미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같은데요.
금융컨설팅 업체인 CMPR의 대표로 일하고 있어요. 은행, 보험사들의 금융컨설팅, 리스크 관리 등과 같은 컨설팅과 더불어 리스크 관리, 관련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컨설팅 업무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고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는 본능적인 자극이 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일상에서 오는 무거운 자극들을 전환시키는 거죠.
사실 현재 타고 있는 자전거의 자격도 만만치 많고, 사무실에 오디오 기기도 범상치 않아보여요. 취미, 혹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투자하는 돈도 만만치 않는데, 자전거를 고르는 기준은?
아, 절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물건을 사러 다닐 여유도 없어요. 저의 호사는 정말 자전거, 오디오, 와인 이 정도로 제한되죠. 실용이 됐든 가치가 됐든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요. 엄밀히 말하면 자전거의 경우, 경량을 쫓거나 하지는 않아요. 사실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는 BMW 브랜드에 끌려 MTB를 구입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격 대비 사양은 낮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도 꾸준히 타고 있어요. 사이클은 윌리어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명품이라기보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좋은 도구의 의미가 큰 거죠. 그걸 위해 들이는 돈은 당연한 거고, 대신 다른 욕심이나 욕망의 범위를 줄이는 거죠. 이번 PBP 참가도 마찬가지에요. 여름휴가대신 PBP를 선택하고 이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하는 거죠.
여름휴가 대신 PBP 참가를 선택했고, PBP 참가 후 소중하게 간직할 기념저지를 얻었다.
다시 PBP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왜 고통스러운 레이스를 자꾸만 도전하게 되는 걸까요?
고통만이 다 라면 하지 않겠죠. 고통보다 큰 기쁨이 있으니까 자꾸 도전하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전 아직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고통의 정점을 맛본 사람들은 웬만한 고통을 겪어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을 가지게 된다잖아요. 그리고 고통을 느끼는 것에 무뎌지는 부분도 있는 것같아요. 내 몸 안에 느끼는 고통과 함께 어디인지도 모를 프랑스의 어느 언덕에서 새벽의 푸르른 여명을 맞이하는 순간의 살아있다는 느낌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어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의 무언가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죠. 번잡한 기억과 일상에서 느껴던 스트레스같은 것들은 그 순간 범접을 할 수가 없어요.
레이스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요?
쉬지 않고 달리다 잠깐씩 지정 포스트에 마련된 버스나 거리에서 자기도 하는데 수면 사이클이 깨지다 보니 막상 자려고 누우면 잘 수가 없었어요. 학생시절 시험 공부하다가 자야겠다 싶어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아 힘들어하고 다음날 시험볼 때는 막상 졸려하는 것처럼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안장 위에서는 잠이 오는 거예요. 낯선 밤길을 달리는 두려움도 있고, 자동차의 위험도 있어서 야간 라이딩에서 오는 잠을 조절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 것같아요.
기록은 어떤가요?
이번 도전은 90 시간 안에 1200km를 완주하는 것이었지만 저는 80시간 안에 완주하는 팀에서 출발을 했어요.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네 사람이 참가했는데 한 사람을 빼고 모두 완주를 했고, 저 또한 80시간 안에 경기를 마쳤죠. 자전거는 확실히 정직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노력한 만큼 실력이 나오고, 자기가 힘을 쏟은 만큼 데려가 줘요. 이번 레이스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라는 타이틀에 얽매여 꼭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고, 그래서 파리와 브레스트를 잇는 길들의 풍경은 많이 놓친 것 같아요. 그래도 거의 자지 않고 달리다 보니 해뜨고 질 때가지의 모든 프랑스의 풍경과 만나게 되요.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던 것이 아쉽기도 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이 대회와 다시 참가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PBP 2011의 평균 참가연령이 49세,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극한의 라이딩에 도전했다.
이번 레이스에서 얻은 것은?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채 이 길을 달리는 전 세계의 수천의 사람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번 레이스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이 대회의 평균 나이가 49세 정도라고 하니 정말 다양한 연령대들이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는 거죠. 이들이 경쟁 아닌 경쟁을 펼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 다시 마주치면 반갑기가 그지없어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이 길에서의 행복은 별 게 아니에요. 아주 원초적인 것만 잠시 해결하면 만사 행복이거든요. 이 길을 달리다 보면 그동안 마음대로 먹고 누울 수 있는 내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하죠. 그리고 레이스에서 자주 마주쳤던 이탈리아에서 온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사이클에 들인 내공이 어느정도 감지하게 되더라고요. 함께 달리는 부부,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근육,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에너지를 보며 나또한 자극을 받게 되죠. 아, 그리고 이번 레이스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라면 5kg감량. 대회때까지도 몰랐는데 돌아와서 보니 5kg정도가 빠졌더라고요. 가장 큰 성과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거의 하루 24시간 자지 않고 길 위를 달리면서 사실 가는 길 내내 길바닥에, 건물 벽에, 나무 기둥에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로 인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어요. 그러나 자욱한 안개 가득한 시골길을 달리며 잠시 헤매기도 하고, 차도에서 흔들리는 자전거 위에서 두렵기도 하고, 일상에서 나와 프랑스의 다른 길을 달리는 저를 만나는 시간은 일탈이 아닌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여행의 끝은 결국 나이고 사람인 것 같아요. 삶에서 꼭 필요하다 싶어 움켜지고 있던 것이 우리가 달리는 길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데, 저도 이제는 일도 변화를 좀 주고 내게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좀 더 많은 곳들, 다른 곳들을 달리기 위해 도전해 보려구요. 그렇게 달리는 극한의 순간에는 언제나 제 자신을 만나게 되거든요.
[이 게시물은 장한수님에 의해 2012-06-12 20:04:05 월간더바이크에서 이동 됨]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