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길용우
자신이 피어야 할 자리를 아는 연기자
길용우의 ‘내일이 오면’
탤런트 길용우는 그 어떤 연기자보다 푸릇푸릇하게 빛나는, 그리고 자신이 피어야 할 자리를 아는 연기자다. 큰 꽃일 때도 작은 꽃일 때도, 만개한 꽃일 때도 망울진 꽃일 때도 조건이나 위치에 어울리는 꽃을 피우기 위해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37년, 연기생활의 원숙한 관록을 자랑하는 지금도!
editor 송해련 photo 이성규
봄 이 오고 있었다. 어느새.
개나리도, 진달래도, 목련도 피어 어느새 벚꽃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연기자 길용우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나 연극, 영화가 나무라면 연기자들은 그 나무의 수많은 꽃들이 아닐까 하는. 좋은 작품일수록 탐스러운 꽃들이 많이 피어난다. 조연, 주연 가릴 것 없이 자신이 피어나야 할 자리에 마땅히 망울을 터트리고 각각의 색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꽃에 비유되는 배우들의 삶은 화려해보이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기다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쉽게 잊혀 지곤 한다.
탤런트 길용우는 그 어떤 연기자보다 푸릇푸릇하게 빛나는, 그리고 자신이 피어야 할 자리를 아는 연기자다. 큰 꽃일 때도 작은 꽃일 때도, 만개한 꽃일 때도 망울진 꽃일 때도 조건이나 위치에 어울리는 꽃을 피우기 위해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37년, 연기생활의 원숙한 관록을 자랑하는 지금도!
탤런트 길용우와의 인터뷰는 아디아스코리아와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 장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이어진 인연은 더 바이크와도 닿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이제 길용우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배우,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목소리에서 건강함이 느껴졌다. 검은 색 슈트와 푸른 색 셔츠, 청바지 차림의 캐주얼한 모습은 사뭇 쉰 일곱의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에게서도 봄이 느껴졌다.
“젊게 사는 비결이요? 글쎄요. 자신의 신체를 건강하게 가꾸고 일의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건강하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외적인 조건에 묶여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것이 강박관념이 되면 곤란하죠.”
그는 요즘 SBS 주말 드라마 ‘내일이 오면’에 출연 중이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필모그라피를 찾아보니 1년 2~3작품 씩 꾸준히 드라마와 함께 했다. 지난해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빅뱅의 차림으로 꽃중년의 타이틀을 차지할 때도 그렇고, 최근의 <포세이돈>, <천만 번 사랑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1, 2, 3공화국>, <조선왕조 오백년>, <간난이>, <억새풀>, <사모곡>, <달빛가족>,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서울 하늘 아래>와 같은 잊혀지지 않는 드라마까지 끊임없이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 모든 작품이 배우로 살아온 ‘길용우’의 이력이다. 다른 행성에 살도록 운명 지워진 스타는 아니지만 올곧게 이어온 그의 배우로서의 투박한 과거가 마음을 끈다. 치열한 배우들의 캐스팅 경쟁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작품을 하며 생명력 있는 배우로 남을 수 있었는지, 정글보다 험난한 방송계에서 연일 안타를 쳐온 이유는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 온 것은 아마도 연극에서 출발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시절부터 빠져 지냈던 연극판이 저의 지금을 키워 온 근본일 겁니다.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준 연륜, 디테일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손만 나오는 장면이어도 나이 먹은 배우는 어딘지 모르게 차이가 나요. 연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재주가 아니에요. 삶의 희노애락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노력이죠.”
지적인 신사의 어깨와 상처받은 사내의
굽은 등을 모두 담아내는 배우, 길용우
그는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대학연합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연기에 빠져 지냈던 그는 1975년 극단 ‘민중’단원으로 데뷔해 MBC탤런트가 되었다. 탤런트 데뷔와 함께 주인공으로 발탁된 그는 데뷔 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의 화려한 필모그라피가 이를 대변해준다.
“이제는 주연, 조연의 구분이 필요 없어요. 나이가 든다는 건 인생을 조연의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라면, 휴머니즘이 있는 영화라면, 그리고 우리의 역사와 삶이 드러난 작품이라면 나는 언제든 할겁니다. 그런 면에서 제1, 2, 3공화국과 같은 작품은 드라마를 하면서 저 자신과 사회, 정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죠. 특히 예전에 ‘땅’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어요. 땅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조명해보는 드라마였는데, 드라마가 갖는 정치성으로 금새 막을 내리고 말았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에요. 배우는 그 드라마 속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에요. 그런 면에서 드라마 속에서 시간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아주 즐거웠던 캐릭터 작업은 <달빛가족>이었어요. 아들만 있는 집 둘째 아들로 사고뭉치 캐릭터였는데 내 안에서 코믹하고, 엉뚱한 부분을 끌어내면서 드라마 내내 개인적으로도 즐겁게 했던 작품입니다.”
작품 얘기를 꺼내자 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제는 톱스타가 된 스타 배우들의 신인시절 이야기, 드라마 촬영장의 에피소드. 그러다 그가 잠시 배우의 길을 그만둘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불규칙한 생활과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는 인기에 대한 불안, 끊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는 배우로서의 삶에서 조금 빗겨나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계속 관리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떠나려 했지만 떠나지 못하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배우는 저의 천직인 것 같아요. 끝없는 자기 관리에 대한 부담이 어디 연예인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겠어요? 우리는 모두에게 슈퍼맨이 될 것을 종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고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길밖에 없죠. 그래서 저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운동을 해요. 승마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무조건 쉬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합니다. 요즘에는 자전거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요. 배우는 자유직업이기 때문에 취미가 없으면 굉장히 허망해져요. 집중할 곳이 필요해서 시작한 건데 자전거를 타다보면 안에 있던 것들이 비워지는 느낌이에요. 언덕을 오르다 한계에 이르면 다시 내리막에서 여유를 가지게 되요. 그래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자전거를 타면서 배우게 됩니다.”
짧은 인터뷰 속에 그를 다 담을 수 없지만, 그는 아름다운 배우임이 틀림없었다. 고수들이 호들갑 떠는 일이 없듯이 낮고 조용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러나 유쾌하게 그를 보여주었다.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얘기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배우들이 있지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고. 그런 면에서는 그는 존경하는 배우로 연기자 이순재 씨를 꼽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연기하는 그와 같은 연기자로 남고 싶다고.
수많은 캐릭터를 넘나들었던 그가 또 다시 연기 욕심을 부린다. 다음 작품은 아주 비열한 악역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싶다고. 지적인 신사의 어깨와 상처받은 사내의 굽은 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배우 길용우. 어딘지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한 온기를 함께 지닌 이 배우가 요즘 빠져 지낸다는 자전거는 그리 빠르지도, 그리 느리지도 않게 끊임없이 지켜온 그의 배우로서의 모습을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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