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삼천리 신제품 세미나
창립 70주년을 바라보는 감회
삼천리자전거(주)(이하 삼천리, 또는 삼천리자전거)가 70주년을 맞았다. 삼천리의 이름은 누군가에게 녹슬고 철사로 짐받이를 칭칭 동여맨 짐자전거로,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버지가 처음 사준 자전거로 기억된다. 참으로 장구한 세월이다. 3대에 걸쳐 이름만 들어도 척하니 알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적어도 우리보다 우리 아버지의 세대, 또는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게 자전거는 보편적이었다. 지금도 그런 자전거가 존재하는데, 그 시절 삼천리자전거의 자전거는 그야말로 일꾼이었다. 당시 지구 반대편에는 투르 드 프랑스를 달리기 위한 ‘머신’이 존재했으나, 삼천리자전거에게 그러한 명예가 주어질 리 없었다. 사람을 태우고 짐을 옮기다가 어느덧 체인이 끊어지고 바큇살이 휘기 시작하면 곳간 구석에서 조금씩 산화되는 운명이었다. 삼천리자전거는 억센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삼천리를 단지 생활차를 생산하는 기업이라고 얕잡아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역사는 한국 자전거의 역사의 큰 줄기였고, 그들이 만드는 자전거가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겨 타는 자전거이기 때문이다.
2014년 삼천리자전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난 1월 21일에 열린 2014 삼천리 신제품 세미나가 열렸다. 청주 라마다 호텔에서 열린 신제품 세미나는 삼천리 70주년 기념회와 함께 지금까지 대리점으로 활약한 각 지역의 숍 사장이 모여 결속을 다지는 자리였다. 세미나실은 1,000여 명의 초청자로 가득 찼다. 평균 십 수 년 동안 삼천리와 동고동락한 대리점 점주들이었다. 김석환 대표이사는 70주년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음식점의 경우 3년 안에 80%가 폐업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과 삼천리는 평균 15년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라며 그간 삼천리와 대리점의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또한 그는 “앞으로도 삼천리 자전거는 기술 개발과 기술 지원에 중점을 두고 삼천리 대리점과 가족 같이 지낼 것”을 약속했다.
이번 세미나는 이제껏 삼천리 자전거의 행보와 앞으로의 비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70주년을 기념하는 제품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새롭게 변화한 완성차 라인과 새로운 기술 개발 목록을 주목하는 것은 단연코 흥미로웠다. 이것은 오로지 성능을 우선하는 고가의 자전거에게 기대하는 바와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다. 삼천리자전거는 가격대비 성능이라는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트렌드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삼천리 자전거의 신제품을 몇 가지 경향으로 정리하고, 그들이 트렌드를 풀어나가는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스틸의 재발견 - T830
T830은 일반 스틸보다 약 두 배 정도 강한 강도를 보유한 재질이다. 고강도 조직인 마르텐사이트와 연성을 높이는 페라이트를 섞어 만드는 이 재질은 현대 하이스코에서 자동차용 소재로 개발된 것인데, 삼천리와 협업을 통해 프레임을 생산하였다. 이 재질의 프레임은 기본적으로 크로몰리와 비슷한 물성을 갖지만 보다 가볍고 낮은 생산가에 공급한다. 700c 프레임으로 제작할 경우 일반 크로몰리 프레임에 약 700g 정도 가벼운데, 버티드 가공을 할 경우 프레임의 무게는 1.58g이다. 실제 현재 삼천리에서는 8.66g에 지나지 않는 경량 하이브리드를 개발 중이다. 만약 이 자전거가 출시된다면 50만 원을 밑도는 소비자가가 책정될 것이라 한다.
삼천리 자전거는 이 신형 소재를 적용한 유니콘 시리즈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유니콘 MV는 20인치 미니벨로로, 논버티드 T850 프레임에 마이크로쉬프터 7단 구동계와 아노다이징 컬러림이 장착된다. 유니콘 F는 접이식 자전거이며,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쉬프터 7단과 아노다이징 컬러림으로 구성된다.
2. 70주년 기념모델의 출시 - 골드윈, MTB3000
70주년 한정판 자전거가 나온다. 이 모델은 삼천리 7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생산 모델로서 의미가 있다. 이 자전거는 기존에 있던 스팅거 100모델을 기반으로 프레임에 하이폴리쉬를 처리하고 아노다이징 림과 70주년 엠블럼을 사용해 한정 생산될 예정이다. 70주년 기념작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상용모델이라기보다는 각 대리점에 기념적인 자전거로 소량 공급할 예정이다.
한편 러그드 프레임의 로드레이서 골드윈이 기념모델로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제품은 80년대 삼천리가 만든 경륜 프레임 골드윈의 복각판으로, 70주년 이벤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골드원을 양산한 계획은 없으나 소비자의 반응이 좋다면 정규모델로 생산하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다.
3. 보급형 27.5인치 출시 - 태풍 M1, 스팅거 M1, 칼라스 M35
태풍과 스팅거, 칼라스는 일상에서 편안한 라이딩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자전거다. 가격대로 보자면 태풍이 가장 낮으며, 그 다음 스팅거, 칼라스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모델 모두 26인치와 더불어 27.5인치 버전을 출시하였다. 휠 사이즈가 커진 만큼 평지 주행은 물론 오프로드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태풍 M1은 21단 알로이 자전거다. 그립쉬프트 변속시스템과 스프링 안장, 체인 걸림 방지 크랭크, CNC 컬러림으로 꾸몄다. 한편 스팅거 M1는 시마노의 21단 변속시스템을 이용하며, V-브레이크, CNC 컬러 이중림을 장착하였다. 태풍과 스팅거는 27.5인치 휠사이즈 외에도 신장이 작은 유소년이나 여성에게 적합한 24인치 버전으로도 출시된다.
‘국민 MTB’ 칼라스 역시 27.5인치 버전을 내놓아 새로운 휠사이즈의 첨병 역할을 맡았다. 칼라스 M35은 시마노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와 아세라 24단, 썬투어 XCM 유압식 락아웃 서스펜션 포크를 사용하여 오프로드에 보다 적합하다.
4. 다양한 색상과 하이림의 만남 - NX 1.0, 모멘텀
700C NX 1.0은 에어로다이나믹을 적용한 프레임 설계와 하이 폴리쉬 처리한 은은한 광택으로 독특한 매력을 갖추었다. 스람 X4 8단과 알루미늄 캘리퍼 브레이크, 50mm 프로파일의 알로이 림은 스포티하면서 세련된 모습으로 젊은 자전거 마니아를 공략할 예정이다.
모멘텀은 강렬한 색 대비에 승부처를 걸었다. 넓적한 다운튜브가 특징인 이 자전거는 스람 X4 8단과 50mm 림을 적용하였다. 모멘텀은 공격적인 배색과 명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자전거다.
5. 입문급 로드바이크의 시대 - 랠리 14, XRS 16
흐름은 로드바이크로 넘어왔다. 사실 오프로드보다 온로드를 더 많이 접하는 우리의 환경에서는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겠다. 편안함보다는 다이내믹한 주행감과 속도를 추구하는 로드바이크는 간단한 이동수단부터 도심 내에서 속도를 즐기는 레저스포츠로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랠리 14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로드바이크를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격이다. 핸들바에 달린 시마노 썸쉬프터 14단은 로드바이크의 오래된 변속방식을 따르되, 현대적인 디자인을 보인다. CNC 컬러림과 알로이 듀얼 캘리퍼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무게는 11.7kg이다.
XRS는 랠리의 변속시스템에서 한층 진화된 모습이다. 장착된 신형 클라리스는 후드를 잡지 않고도 변속을 할 수 있는 듀얼 컨트롤 레버를 지원한다. 즉, 드롭바를 잡고도 변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공격적인 라이딩을 할 수 있다. CNC 아노다징 3중림은 에어로 효과를 고려하였고, 50-34T의 컴팩트 기어크랭크를 장착하였다. 알로이 포크, 듀얼피봇 캘리퍼 브레이크를 달았다. 부품의 전반적인 구성으로 볼 때 입문용 로드의 구색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다.
6. 전기 자전거의 대두 - 팬텀 XC, 팬텀 시티
전기 자전거가 새로운 대세로 떠오를 수 있을까? 삼천리는 지난 해 전기자전거 판매량이 육천 대에서 만오천 대로 증가한 사실을 주목했다. 전기 자전거인 팬텀 시리즈는 용도에 따라 스포티한 스타일의 팬텀 XC와 실용성을 겸비한 팬텀 시티로 나뉜다.
팬텀 XC는 서스펜션 포크가 달린 MTB형태의 전기자전거이다. 스로틀 방식과 PAS 방식을 겸용하며, 시마노 7단을 달았다. 포크는 XCT 서스펜션 포크를 갖추었다. 팬텀 시티는 리지드 포크와 바구니가 장착되어 실용성을 높였다. 마찬가지로 스로틀 방식과 PAS 방식을 지원한다. 이 두 자전거는 동일한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주행거리는 비슷한데, 완충 시 스로틀 주행으로만 35km, PAS 1단으로 주행할 때는 80km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관련 부품에서도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디스플레이가 일체형에서 분리형으로 바뀌어 정비가 편리해졌으며, 야간에도 주행을 할 수 있도록 백라이트 기능을 추가하였다. 전기자전거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서도 약간의 개선이 있다. 팬텀에 쓰이는 삼성의 SDI 배터리의 용량은 7.3Ah에서 8.3Ah로, 약 20% 정도 증가했다.
7. 카본 프레임의 확장 - 타칸 50
한때 카본 프레임은 고급 자전거의 상징이었다. 근래에 들어 점차 카본 자전거의 진입수위가 낮아지면서 로드바이크는 100만 원 후반대, MTB는 200만 원대부터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라이트 유저들이 소비하기에는 버거운 금액이다.
타칸 시리즈는 저렴한 가격에 카본 프레임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최초 모델인 타칸 70이 작년에 기대 밖에 히트를 기록하면서, 삼천리 자전거는 보다 등급을 낮춘 타칸 50을 내놓았다. 타칸 50은 데오레 30단을 사용한 타칸 70보다 한 단계 낮춰 알리비오 27단을 장착했다. 타칸 50은 저렴한 카본 자전거라는 슬로건을 더욱 공격적으로 구사하며 보급형 MTB 시장을 노린다.
입문급 로드바이크인 XRS도 카본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가격이나 부품구성, 프레임조차 공개되지 않았지만 삼천리 자전거는 머지않아 보급형 카본자전거로 XRS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마치며
세월이 지나면서 자전거와 사람의 관계가 재설정되었다. 자동차 이전의 교통수단이었던 자전거는 자동차 포화현상과 맞물려 도시에서 대안교통수단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가다마이를 입은 노신사가 철자전거에 짐짝을 싣고 읍내를 누비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에 헬멧과 전문 복장의 라이더가 알루미늄 혹은 카본 재질의 자전거를 타고 한강과 도시 근교를 누빈다. 70주년을 맞아 발표된 삼천리의 자전거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었다. 화려한 색과 날렵한 선을 가진 자전거는 단순히 ‘탈것’이 아닌, 일종의 액세서리와 같은 구실도 한다. 한편 적재량이나 내구성과 같은 실용성보다는 가볍고 편안한 주행감이 자전거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삼천리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되, 유럽이나 미국 고급 자전거 회사처럼 엘리트 동호인이 되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국민 MTB’라고 불리는 칼라스는 소위 ‘도로를 달리는 MTB’로, 즉 산악 주행을 하지는 않지만 MTB의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사람을 위해 개발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삼천리의 자전거는 유행을 따르되, 결코 유행을 앞서거나 동떨어진 길을 걷지 않는다. 원색의 프레임이 유행하자 곧 모멘텀이나 솔로와 같이 화려한 자전거를 출시하였으며, 27.5인치가 새로운 휠사이즈로 떠오르자 곧 여러 차종에서 27.5인치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삼천리의 제품은 소비자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엘리트 동호인들이 보기에 성이 차지 않을지는 몰라도, 삼천리가 만드는 자전거는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그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 판단은 유보하고, 분명한 것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르는 전략이 지금껏 삼천리가 국내 점유율 1위를 지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삼천리의 신제품 소식은 일반소비자 뿐만 아니라 시장상황을 판단하는 이들에게도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곧 국내 사정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