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비밀의 섬 강화 교동도 [월간 더바이크]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의 섬
강화 교동도
교동은 강화도에 속한 또 하나의 섬으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여유로운 풍광을 자랑한다. 섬의 남쪽으로는 석모도가, 북쪽으로는 북한의 황해도 연백평야가 눈앞에 선명히 펼쳐진다.
editor 인유빈 photo 이성규 rider 배경진, 인유빈
강화 교동?
강화도는 들어봤어도 교동도에 대해서는 생소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알더라도 쌀이 유명하다는 것 정도이며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가는 곳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강화 교동은 강화도에서 바다를 한번 더 건너 입도해야하는 섬중의 섬이다. 약 47㎢ 면적에 해안선 36km로 강화도에서 가장 넓고, 우리나라에서는 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교동의 남쪽에는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가, 북쪽으로는 불과 2~3km 거리에 황해도 연백평야가 펼쳐진다. 망원경이 없이도 생생히 볼 수 있어 얼마나 가까운지를 실감케 한다.
또한 고도가 매우 낮은 곳이다. 10m 높이밖에 되지 않는 지역이 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화개산이 해발 260m로 가장 높은 산이며, 나머지 율두산(89m), 수정산(75m), 봉황산(75m), 고양이산(35m) 등의 낮은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업다운힐이 많은 다이내믹한 코스이기보다는 평지를 여유롭게 달리며 풍경을 즐기며 라이딩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형 특성으로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도 많이 찾고 있으며 강화나들길 9코스와 10코스도 자리하고 있다.
두 번의 검문, 두 번의 긴장감
사실 이 곳은 기자의 부친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때문에 설과 추석을 쇠러 1년에 두 번은 꼭 방문한다. 그래서 교동이 어떤 곳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차를 이용해 교동도에 입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섬을 이어주는 것은 배 뿐이었다. 미리 그날의 밀물과 썰물 시간을 계산해 넉넉히 출발하여 강화 창후리 선착장에서 오랜 시간을 대기한 끝에 교동도 선착장인 월선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재는 교동대교가 2014년에 개통하면서 단 5분 만에 간편히 건널 수 있게 되었다.
북한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민간인통제구역인 이곳은 해병대가 24시간 지키고 있는 군사지역이다. 따라서 두 번의 검문을 거쳐야만 입성할 수 있다. 대교를 건너기 전 1차 검문 초소에서 본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목적지를 밝히면 초록색 출입증을 지급해준다. 무장군인이 검문을 하기에 긴장될 수도 있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간첩으로 오해해 잡혀갈 일은 없다. 출입증을 받고 출발하면 곧이어 대교 바로 앞에서 2차 검문을 한다. 이때는 아까 받은 초록색 출입증을 보여주면 통과가 가능하다. 교동 주민이나 연고가 있는 자들은 일반 출입증과는 다른 노란색 출입증을 가지고 있어 상시로 드나들 수 있다.
대교를 건널 때는 차를 이용해 들어가는 편이 좋다. 대교 위는 바람이 강하고, 흐린 날에는 안개가 자욱해 시야가 좁아지며 자전거길이 따로 있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또한 대교에서의 모습을 찍겠다고 중간에 서서 찰칵거리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초소에서는 중간에 서지 말라는 점을 신신당부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전거만 이용할 경우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출입을 제한할 수도 있다. 또한 00시에서 04시 사이에는 대교를 통제해 출입이 불가하니 사전에 알아두면 좋다.
이번 코스는 교동도 선착장인 월선포에서 시작하여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복귀하는 약 30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경로로 잡았다. 사실 하루 만에 돌 수 있는 크지 않은 섬이라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에 다 들릴 수는 있지만, 특수지역이기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농로나 외길 등의 작은 길이 많아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웬만큼 지리를 아는 현지 사람이 아니고서는 큰 길을 이용해 크게 도는 것을 추천한다. 길가에 사람도 많지 않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니 사전에 정보를 조사해가는 것이 좋다.
점차 활력을 되찾는 교동
이처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가깝고도 먼 교동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외부와 차단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도와 가까우면서도 쉽게 나올 수 없기에 과거의 교동은 예로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선택되곤 했다.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과 광해군 등이 이 곳으로 유배되었으며 섬 곳곳에 증거가 남아있다.
6.25전쟁 이후에는 북한과 가까워 더욱 더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바뀌면서 외지인의 때가 타지 않는, 어찌보면 고립된 섬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시골 중에서도 정말 시골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외부의 유입 인구나 외지인들이 방문이 드물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와 물, 맑은 하늘을 즐길 수 있다.
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가장 기본적인 슈퍼나 병원, 약국 등을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멀리 가야만 했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인지 인구가 점점 축소되어 적막했던 곳이다. 대교가 생긴 후에는 조용했던 섬이 조금씩 활력을 찾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비포장길을 넓직한 아스팔트길로 닦았고, 섬 안에서만 뱅글뱅글 도는 마을버스만 있던 곳에 강화를 오가는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역사를 알면 교동이 보인다
교동에 입성하자마자 출발지인 월선포로 이동했다. 교동의 필수 관문이었던 월선포 선착장은 현재 선박이 운행되지 않기에 차를 세워두기 좋다. 이번 코스에는 MTB와 하이브리드를 이용했다. 섬이 발전되고 있는 터라 아직 많은 곳들의 지형이 울퉁불퉁하며 풀도 많기에 로드보다는 MTB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교동(喬桐)’이라는 지명은 신기하게도 신라시대 경덕왕 때부터 불려왔다고 한다. 지명 자체부터가 역사인 셈이다. 넓지도 않지만 좁지도 않은 이 섬에는 교동읍성, 교동향교, 연산군 유배지, 남산포 삼도수군통어영지 등 여러 역사현장이 있다.
월선포에서 큰 길을 쭉 따라 3km 정도 가면 왼쪽에는 교동읍성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에는 교동향교로 가는 길이 나온다. 우리는 좌회전하여 교동읍성으로 향했다.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된 교동읍성은 둘레는 430m, 높이는 약 6m의 크기로 보존되어 있다. 서해안의 외적의 방어를 위해 축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인조 7년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했다. 아직도 이 곳에는 몇몇의 마을 사람이 살고 있어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이곳을 드나들었던 수군들에 빙의해 문을 몇 번 드나들어 보았다.
옛 모습 그대로, 대룡시장
촬영 당일 날씨는 한파 특보가 내려진 영하 7도의 날씨였다. 교동은 사방에서 해풍이 불어오는데다 겨울에는 한기가 더해 예보 날씨로부터 10도 가량 차이 나는 낮은 체감온도를 느낄 수 있다. 읍성에서 나오면서 한국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로 발걸음을 돌리려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에너지 보충으로 몸을 데울 겸 대룡시장을 찾았다.
대룡시장은 6.25 전쟁시 황해도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예전에 비해 많이 정돈된 편이다. 건물들에 색을 새로 입히고 벽화를 그려놓는 등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들어 놓았다. 큰 틀은 바꾸지 않으면서 옛 모습을 보존해 인상적이다.
이 곳에는 이발소부터 음식점까지 없는 것이 없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드라마 세트장을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풍경이다. 서있기만 해도 옛날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가게 안에 할머니 세 분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대룡시장에 왔으면 미국스타일의 원두커피는 넣어두고 다방에 가 보아야 한다. 따뜻한 무언가가 마시고 싶어 ‘교동다방’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정말 많은 차 종류가 있었지만 옛날 쌍화차와 수세미차 등을 시켜 마셨다. 가게에서는 기자가 잘 모르는 옛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차의 향과 다방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낭만적이었다. 가게 안에는 다녀간 손님들의 메모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젊은이부터 나이드신 분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기자도 메모를 하나 남겨놓고 오면서 다방 사장님께 또 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밖에 나오니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다. 시장 부근에 있는 마트와 편의점에 들러 물이나 초콜릿 등 간단한 것들을 쟁여두었다. 앞으로 가게라고는 찾아볼 수 없음을 알기에 이곳에서 미리 사두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 미리 볼일을 봐 두었다.
교동쌀의 젖줄, 난정저수지와 고구저수지
시장에서 나와 큰 길을 따라 양갑리 쪽으로 5km 이동하면 다음 도착지인 난정 저수지가 나온다. 가다보면 중간 부근에 유명한 느티나무가 하나 있는데 일명 ‘양갑리 느티나무’라 부른다. 420년이나 이 자리에 우뚝 서있던 이 나무는 둘레만 약 9m에 높이가 35m에 달한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아직까지도 잘 보존이 되고 있다. 이 나무를 실제로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난정저수지로 이동한다. 보통 섬을 생각하면 많은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교동은 얘기가 다르다. 섬 주변에는 물살이 센 편이며, 간만의 차가 큰 편으로 썰물일 때에는 선박의 출입이 편하지 않는 등 여러 환경적인 요건 때문에 어업보다는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때문에 과거부터 주민들은 땅을 간척하여 교동평야를 일궈냈다. 공해가 없고, 햇볕이 고르게 잘 드는 이 평야에서 나는 교동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쫄깃한 느낌이다.
이러한 훌륭한 농산물 재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난정저수지이다. 둘레가 5km나 되는 대규모의 농업용수용 물탱크인 셈이다. 교동에는 난정저수지 이외에 저수지가 한 곳 더 있는데, 고구리에 위치한 고구저수지라는 곳이다. 고구저수지에는 낚시터가 있어 낚시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난정저수지에 도착해서는 뚝방길에 올라가 탁트인 곳에서 라이딩을 했다.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했고 추운 날씨인 만큼 하늘이 더 맑고 파랬다. 시선을 돌려 저수지 쪽을 보니 꽁꽁 언데다 눈이 쌓여있어 눈이 부셨다. 봄에 온다면 더욱 풍경을 여유롭게 쳐다볼 수 있을 듯 했다. 역시 교동은 약간 선선한 날씨인 봄이나 가을에 와야하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실향민의 애환이 담긴 망향대
난정저수지에서 무학리쪽으로 4km 정도 이동하다보면 망향대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가면 작은 골목이 나오며, 끝까지 쭉 들어가면 마지막 가정집이 나온다. 아마 제대로 찾아갔다면 ‘길없음’이라는 돌덩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표식을 지나쳐 조그마한 동산을 오르면 저 멀리에 황해도가 펼쳐지는 망향대에 도착한다. 특별한 고층타워 같은 것이 있는 곳은 아니다. 그냥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동산 같은 곳에 위치해있다. 북쪽과 불과 3km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의 망향대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실향민들의 애환이 담긴 장소이다.
망향대 전방에는 철책선이 이어져있다. 이 철책선 옆길을 쭉 타고 가다보면 앞서 언급한 고구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에서 큰길을 쭉 따라 봉소리를 거쳐 월선포에 도착하면 코스는 끝이 난다.
사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화개산으로도 올라가봤을 것이다. 맑은날 화개산 정상에서의 풍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도 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화개산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또한 기자가 강추위로 인해 건너뛴 교동향교 또한 역사적인 장소이므로 가볼만하며, 멋진 풍경들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강화나들길 9코스와 10코스를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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